퇴피삼사/ 이 정도는 양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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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피삼사/ 이 정도는 양보하지만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3.02.2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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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 물러날 퇴, 避 피할 피, 三 석 삼, 舍 집 사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51

젊은 시절, 어느 봄날 한 사람이 찾아왔다. 만나자 마자 사촌형 Y와 매우 친했다며 한참 친근감을 표하기에 당시로서는 값비싼 식사를 대접하여 보냈다. 몇 발자국 가던 그가 다시 돌아와 차비가 떨어졌는데 돈을 좀 빌려 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2000원을 손에 쥐어 보냈다. 그는 또 찾아오고 또 왔다. 그때마다 용돈이 계속 사라졌다.
여름방학이 되어 고향에 들러 사촌형에게 그의 얘기를 하니 모르는 사람이란다. 읍내에 들어가 알아보니 ‘상습범이야. 많은 사람이 당했는데 너만 모르고 있었구나.’ 어이가 없었다.
가을에 그가 또 찾아왔다. 자리에 앉은 후 물만 먹고 밥은 시키지 않았다. 밥 한끼 먹자길래 밥 살 형편이 안된다며 형이 사면 먹는다고, 그리고 그간 빌려간 돈 언제 갚으실 거냐고 물었다. 
화장실에 간다던 그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어리석게도 그간 헛되이 돈을 쓰며 마음 고생한 것이 후회되었다. 하지만 소득은 있다. 퇴피삼사(退避三舍)!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을 피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이 성어는 좌구명이 쓴《춘추좌전(春秋左傳)》에 나온다. 진초치병, 우우중원, 기피군삼사(晉楚治兵, 遇于中原, 其避君三舍): 진과 초가 군사를 거느리고 중원에서 만나 싸우게 된다면, 저는 군주를 피해 90리를 물러나겠습니다.
춘추(BC770-BC476)시대 어느 해, 진(晉)나라 왕실에 태자를 세우는 문제로 분규가 발생하여, 태자 신생(申生)이 자살하게 되고 동생인 공자 중이(重耳)는 외국으로 도피하여 떠돌아다니며 갖은 고생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중이는 초(楚)나라 장(莊)왕의 도움을 받으면서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초왕(장왕)은 뜻밖에도 자주 연회에 불러 극진한 예우를 하였다. 하루는 초왕이 또 중이를 위하여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주며 물었다. “만일 그대가 어느 날 그대의 고국 진나라로 귀국하여 왕이 되면 나에게 어떻게 보답하시겠소?” 중이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바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미녀, 보석, 좋은 비단들은 왕이 다 갖고 계시고, 게다가 귀한 짐승의 털과 모피도 다 초나라의 특산품이니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장왕이 늦추지 않고 다그쳐 물었다. “그래도 뭘 해줄 것인지 한 번 잘 생각하여 말해보시오.” 중이가 하는 수 없이 결국 한 가지 제안을 내 놓았다. “이렇게 하시지요. 만약 제가 진나라의 왕이 된 후, 어쩔 수 없이 우리나라와 초나라가 전쟁을 하게 될 경우, 저는 제 군대를 삼사(三舍 : 1사는 30십리, 하루 행군거리)만큼 후퇴하겠습니다. 그래도 초군이 물러나지 않으시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더 이상의 양보는 없습니다.” 훗날, 19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이는 마침내 기회를 얻어 진나라 회공(懷公)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춘추오패(春秋五覇) 중의 하나인 진(晉) 문공(文公)이다.
그 후 초나라가 송(宋)나라를 쳤다. 당시 송나라를 도와주어야 할 입장이 된 문공은 불가피하게 초나라와 대치하게 되었다. 이때 문공이 과연 옛적 망명시절 초왕과 약속한 것을 지켜 전군에게 90리 뒤로 후퇴하도록 명령하였다. 이를 본 초나라 장군 자옥(子玉)이 문공의 뜻을 모르고 교만하여 ‘적이 우리를 두려워 물러난 것’ 이라 여기고 안일하게 대처했다가 대패했다. 
이 고사는 원래는 ‘참고 양보하여 물러서다’ 는 뜻이었다. 훗날 사람들은 ‘앞날을 깊게 헤아려서 양보하다. 양보해서 충돌을 피하다’ 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조금 양보하여 더 큰 것을 얻는 경우를 이르기도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을 멀리하여 피하다’ 는 뜻으로도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즉 자기에게 해를 끼칠만한 자를 미리 피하거나 멀리하여 화를 미연에 막는다는 의미도 갖게 된 것이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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