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양지귀/ 종이 값이 왜 오르나 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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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양지귀/ 종이 값이 왜 오르나 했더니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3.04.1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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洛 물 이름 락, 陽 볕 양, 紙 종이 지, 貴 귀할 귀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54

선거철, ‘ㅇㅇㅇ출판기념회’ 초청장이 자주 날아왔다. 여비서와 보좌관의 전화와 문자에 시달려 뒤끝을 생각해 가 봤다.
온통 을(乙)들로 가득 차 있다. 방명록에 이름 올리고 봉투를 내고 책을 받고 자화자찬과 찬조연설을 들으며 박수까지 쳐 줬다.
물만 먹었더니 배가 고팠다. 지하철 쓰레기통이 눈에 띄었다. ‘그래도 거금이 들어간 것인데….’ 제목은 그럴 듯하다. 두어 쪽 읽으니 졸린다. 집에 오니 아내가 묻는다. “책은 어디 있어?”

방현령(房玄齡)이 쓴‘진서ㆍ문원전(晉書ㆍ文苑傳)’에 나온다. 경상전사, 낙양위지지귀(競相傳寫, 洛陽爲之紙貴), 다투어 베껴가니 낙양의 종이 값이 올랐다.
서진(西晉, 265-316)시절 좌사(左思)라는 한 문인이 있었다. 얼굴이 못생긴데다가 말하는 것도 서툴러 사람들이 별로 중시하지 않았지만 일단 붓을 잡으면 장려한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였다.
어느 날, 그가 삼국(三國)시대의 수도에 대하여 한편의 문장을 쓰기로 결심하고 준비에 나섰다. 아직 경험이 미천한 좌사가 이런 큰 문장을 쓴다고 하니 금방 멸시하는 말들이 나왔다. 당시 매우 유명한 문학가였던 육기(陸機)가 이렇게 조롱하여 말했다. “좌사가 만약 그런 문장을 지어 낸다면 그걸 가져다 그저 술 단지나 덮는 데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좌사는 다른 사람의 조소에 굴하지 않고 아예 낙양으로 이사하여 거의 10여 년 동안 공력을 들여 방대한 문장을 거침없이 써내 마침내 거작 ‘삼도부(三都賦)’를 완성하였다.
문장이 완성되었으나 처음에는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었다. 좌사가 당시 유명한 학자 황보밀(皇甫謐)을 찾아가 보여 줬더니 그 자리에서 높게 평가하고 기뻐하며 한편의 서문을 지어 주었다. 또 다른 유명한 학자인 장화(張華)도는 반고(班固)와 장형(張衡)과 같은 대 시인에 비유하면서 칭찬하여 마지않았다.
이처럼 유명한 학자 두 명이 칭찬해 마지않으니 좌사가 쓴 문장의 가치가 갑자기 백배로 뛰어 올랐다. 고관대작은 물론 귀족ㆍ환관ㆍ문인ㆍ부호들이 앞 다투어 베껴가는 바람에 갑자기 낙양의 종이가 부족하여 값이 일시에 오르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훗날 사람들은 이 성어를 ‘어떤 사람의 저작이 매우 훌륭하여 감탄하고 칭찬할 때’에 비유하여 사용하였다. 지금은 저서가 호평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됨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즉 문장이나 저서가 호평을 받아 잘 팔리거나 쓴 글의 평판이 널리 알려지는 경우에 비유하게 된 것이다.
이 성어와 관련하여 화조재리(禍棗災梨)라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책을 판각할 때는 대부분 배나무나 대추나무 목재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이조(梨棗)는 서적용 판목(版木)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래서 이 성어는 ‘이조가 재난과 화를 입었다’는 뜻이 된다. 물론 내용이 알찬 책은 좋은 나무를 목판으로 써서 만들어낼 가치가 충분하다.
그러나 자기 과시나 허장성세를 내세운 책을 펴내게 되면 죄 없는 대추나무나 배나무만 화를 당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옛날에는 아무 데도 소용이 없는 책을 찍어내면  낙양지귀라는 성어로 비아냥대며 꼬집었다고 한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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