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69) 종교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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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69) 종교란 무엇일까?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3.04.18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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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나 어떤 초월적인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양식아래 그것을 믿고 숭배하며 신앙하는 것에 의하여 마음의 안락과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정신문화의 한 체계. 일반적으로 초인간적 실재(實在)와의 신앙적 관계를 일컬음. 귀의자(歸依者)는 정신적 공동사회를 영위함. 이상은 종교에 대한 사전적 정의이다.

종교(宗敎)의 높을 종(宗)은 집 면(宀)과 볼 시(示)로 구성되어 있다. 즉, ‘종교’란 영혼과 마음을 의지하며 보호받을 집이고 삶의 길을 가르치는 학교이며, ‘종교인’이라 함은 교리로서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집은 더위와 추위 눈과 비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받고 의지하는 곳이다. 세상사는 날씨만큼이나 변덕스럽고 집은 몸을 의지할 수는 있어도 마음까지 의지할 수는 없다. 세상을 사노라면 우리들 마음 또한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에 꽁꽁 어는가 하면 뇌성벽력의 폭풍우에 떨면서 길을 잃고 절망 속에 방황하여 누군가 마음이 쉴 집을 가르쳐 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이럴 때 인간에게 마음을 의지할 집으로 가는 길을 제시 하는 것이 종교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사람과 만물을 이어주는 선한 마음’이 있다. 이 사실은 인종, 언어, 풍습, 시대가 달라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과 만물을 이어주는 선한 마음’을 어떤 분들은 신이라 하며 어떤 분들은 부처라 하고 어떤 분들은 인(仁)이라하며 어떤 분들은 도 라하며 어떤 분들은 사랑이라 하고 어떤 분들은 지혜라 한다. 실체는 같은데 표현이 다를 뿐이다. 다만 어둡고 비좁은 공간에 생각이 가두어져 있는 종교인은 다름을 강조하는데 열중하며 자신들의 스승을 자신들의 좁은 시야에다 가두어 놓는다. 이들로 인하여 종교는 인류 대 통합을 해치면서 세상의 재앙을 만들고 구원의 임무를 배신한다.

종교의 역할은 구원이다. 몸이 굶주리는 자에게는 밥을 주어야하고 정에 굶주린 자는 정을,  마음이 굶주린 자에게는 마음을, 영혼이 굶주린 자에게는 영혼을, 정신이 굶주린 자에게는 정신을, 상처받은 자에게는 치유를, 공포에 떠는 자에게는 위안을, 자유에 굶주린 자에게는 자유를, 정의가 실종된 곳에는 정의를 세워주는 것이 구원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라한다. 현재 종교인은 세계인구의 84%를 점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악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무성해 가고 있다. 종교의 역할에 회의를 갖는 이유이다. 인류의 84%가 권선징악을 배우면서도 악이 판을 치는 이유는 누가 뭐래도 대부분의 종교인이 가르침을 배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득과 안락하게 살고 싶은 사적욕구는 종교인들로 하여금 교리를 배반하게 한다. 종교는 약자의 편에 서야하며 신의 지혜로 악을 밝혀내고 신의 이름으로 단호하게 경고해야한다. 역사는 강자들의 탐욕의 상을 차리기 위한 제물로 약자들이 쓰였음의 기록이다. 사악한 자들은 약자를 짓밟고 종교인들은 그들과 유착하면서 내세가 있으니 참고 견디라 한다. 악이라 함은 사적 욕구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파괴하기 때문인데, 인간의 행복을 파괴하는 악을 견제하지 않으면서 구원을 말한다면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 용기가 없으면 종교인이 아니다. 교리를 실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증오를 부추기면 종교인이 아니다. 증오는 재앙의 칼로 구원의 줄을 끊기 때문이다. 정의보다 이익을 좋아하면 종교인이 아니다. 이익은 악의 심부름꾼이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이 교리를 어렵게 설명하는 것은 진실을 두려워하며 진리를 실현할 용기가 없어  거짓을 숨기기 위한 위장술에서 기인한다. 힘을 가진 악한 자에게 경고하지 못하며 눈을 감아 준다면 악은 점점 성장할 것이다. 종교인들이 구원을 현세가 아닌 내세로 미루는 속셈은 거대하고 강력하며 잔인한 악을 두려워하여 그들과 싸우는 대신 야합하며 한편이 되어 힘없는 약자를 속이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종교가 용기를 잃어버리면 현세의 구원을 포기하고 자신들도 믿지 않는 내세(來世) 타령을 한다. 그들이 내세를 확신한다면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악과 싸우는 고난을 기쁘게 택할 것이다.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우리가 아닌 우리는 패거리를 의미한다. 패거리는 서로 충돌한다. 우리가족, 우리조직, 우리단체, 우리지역, 우리나라, 우리 당, 우리종교, 우리사상은 우리의 구성원에 대해서는 선악을 묻지 않고 우리밖에 대하여 배타적 공격적이며 이는 세상의 불행을 생산하는 원인이 된다. 종교의 역할과 기능을 구원이라 할 때 힘을 가진 악에 대한 견제와 서로 다름을 아우르는 일이야 말로 종교의 사명이라 해야 할 것이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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