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17)/ 암만 글도 옛날보다는 시상살기 좋아졌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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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17)/ 암만 글도 옛날보다는 시상살기 좋아졌지라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3.05.2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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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17

모과나무                           -안도현

모과나무는 한사코 서서 비를 맞는다
빗물이 어깨를 적시고 팔뚝을 적시고 아랫도리까지
번들거리며 흘러도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비를 맞는다, 모과나무
저놈이 도대체 왜 저러나?
갈아입을 팬티도 없는 것이 무얼 믿고 저러나?
나는 처마 밑에서 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모과나무, 그가 가늘디가는 가지 끝으로
푸른 모과 몇 개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끝까지, 바로 그것, 그 푸른 것만 아니었다면
그도 벌써 처마 밑으로 뛰어들어왔을 것이다

강천산 330년 된 모과나무가 분홍빛 꽃을 피워농게 장관이구만요, 모과나무를 봄서 한번은 울퉁불퉁 하도 못생겨서 놀래고 두 번째는 오지게 향기로바서 세 번째는 솔찬히 떫떠름혀서 놀랜다네요. 강천산 해설함서 지는 네 번 놀래야 쓴다고 그라지요. 5월에 피는 이삔 꽃을 보고 탄성 질러야 쓴다고 고럼서 “나는 당신에게 향기로운 사람입니까”하고 질문해보라고 허거들랑요.
아따! 벌써 24절기 중 8번째라는 소만이랑게요. 이 세상 모든 생물이 시나브로 즈그들만의 온 힘과 맴으로 성장해 그득 그득 차는 기쁨을 맛보게 되는 때지라.
그래선지 새복부터 경운기 소리가 딸딸딸딸 거리며 마을 고샅을 휘젓고 다님시롱 수국꽃을 탐스럽게 피우고 다닌당게요. 쟁기로 갈아 엎어진 논마다 콸콸콸콸 물들이 들어가면 서울떽의 마음만 바빠집니다. 하우스 안 못자리 모판에 물도 주러 다녀야 되구요, 물꼬들 마다 쳐다봄시롱 물이 너무 많지는 않는지, 맥혀서 논이 말라버리지는 않는지 살피러 다닌당게요. 감자 밭에 명왈대들도 지금 안뽑으면 오지게 커져부러서 감자 뿌리채 뽑아져버링게 얼릉 뽑아버려야 되고, 감자밭 고랑의 풀들도 싸게싸게 정리해야 허구라.
호박 고구마 순을 황토밭에 간조롱히 심어놔야 가실과 눈 펑펑 오는 겨울날이 맛있어지고 두둑해지제라. 서울떽은 고것도 돌멩이 하나 없는 황토밭에 두마지기 반이나 심어놓고 비가 옹게 솔찬히 오진 맴이 드는디.
옥수수랑 호박도 깔짝깔짝 호맹이로 파서 거름 넣고 심어야 쓴디 아즉 못하고 있어라. 굵은 토마토랑 가지는 심긴 혔는디라. 여름날 주먹으로 콱 쳐서 먹게 수박도 좀 더 심고 노오란 참외도 더 사다가 심어놔야 애들이 푸지게 따먹겠지라. 그러고봉게 산도라지 씨도 지난 장날 사다만 놨응게 검은밭골 산쪽에다 뿌려야 쓰겄고 당귀씨랑 열무씨랑도 얼릉 뿌려놔야 쓴디, 거짓말 한나도 안보태고 부지깽이도 거들어야 쓰는 바쁜날이구만요.
암만 그래도 옛날 보다는 훨씬 낫제라. 서울떽이 처음 오정자 마을에 왔을 때는 손으로 모를 심었어라. “줄이요, 줄”소리에 맞춰서 열댓명이 허리 굽혀서 모심고 잠깐 동안 허리춤했다가 다시 엎드려 손 맞추는 풍경 생각나시제라. 어디쯤에 계셨능가요. 모쟁이 허는 중 아님 줄이요 하고 외치는 사람이었나요. 맨 가상에서 심는 일꾼인지 한가운데서 이리저리 중심 잡는 사람, 혹은 논두렁가상에서 ‘어이! 자네는 와 그리 못한당가, 어제 뭣한다고 잠은 쳐 안자고 넘들 일하는데서 요로코롬 비실대는겨’하고 한바탕 웃겨주던가 하셨겠지요. 서울떽은 손수레에 이따만큼 밥 가득 싣고 무신 국이었는지 생각은 안 나도 엄청나게 많이 해 갔제요. 배는 남산만 해가지고 아침 새참을 해 갔는디 뭔 사기그릇을 갖고 왔냐고 풍신이라고 뒤지게 야단맞고 한쪽에선 울었던 기억이 나거들랑요. 울 시어머님께.
그 다음엔 투묘라고 던지는 모 열풍이 일었제요. 제기같이 생긴 모들을 맴껏 던져서 심는거였는디 뵈기 싫은 사람 속으로 불르면서 머얼리 던지는 쾌감이 좋았지라. 그 다음이 보행 이앙긴디요. 그때는 꼬불꼬불 할매들 지팽이 같은 논이 70마지기였응게 못자리 할라치면 온 마을 품앗이를 혀야 했지라. 아침나절 모판에 씨 넣어 가지고 못자리 논으로 가서 아짐씨들 줄줄이 서서 모판 옮겨서 간조롱히 내려놓는 풍경 생각 나시제라. 대나무 대를 활처럼 휘어지게 꽂고 비니루 칠려고만 하면 호랭이가 물어가게도 바램이 불어갖고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어야 했지라. 70마지기 논에 비료 뿌릴라면 어깨에 비료 한 푸데 얹고 한쪽으로 비료 뿌리면서도 밤 늦도록 뿌려야 제때에 심을 수가 있었제요. 모쟁이 하려면 또 월매나 힘들던지 ‘모쟁이는 장개도 못간다’고 했었제라.  못자리에서 떼어낸 모들을 흙 투성이가  된 채로 비니루에다 모판 싣고 이논, 저논으로 다니다 보면 새복부터 해도 밤 늦게까지 해도 안된당게요. 흙물에 젖은 채로 아이들 젖도 주고 부지런히 밥하고 늦은 밤 빨래까정 하면서도 그 다음날 새복이면 거뜬하게 일어났었는디요. 서울떽 모판 띠는 기술은 어메들이 감탄했었는디. 시방은 쓰잘데기 없게 됐구만요.

지금은 하우스에서 모를 키워농게 아조 편해진데다 비료도 트랙터로 다 뿌려버링게 도와주기만 허면 되제요. 그려도 서울떽네 봄날은 허벌나게 바쁜디 다음엔 모심는 풍경 전해드릴까 허는디 괜찮을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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