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76) 나를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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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76) 나를 알아야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3.06.07 1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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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지득지기자역지득지인(知得之己者亦知得知人) 자기를 아는 지혜를 터득해야 남을 아는 지혜를 얻는다.[설원] 자기를 알아야 남을 알 수 있고 자기와 남을 알아야 세상을 알 수 있고 세상을 알아야 바른 뜻을 지혜롭게 펼칠 수 있다.

나의 마음은 마음의 백과사전이다. 내 속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의 마음이 다 들어있다. 때문에 내 마음을 통해 남의 마음을 알 수 있고 나의 심정으로 남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하여 나를 앎으로서 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나의 인생이 성스럽고 귀중한 삶이 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무가치한 천박한 삶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잘못 앎으로서 자기의 본질을 버리고 주변부에 매달려 성실해야 할 중요한 일은 간과하고 무관심해도 될 일에는 신경을 집중하며 의미와 가치가 전도된 삶의 길을 가면서 기뻐해야 할 일에 분노하고 분노해야 할 일에는 즐거워하면서 살아간다.
사람마다 삶이 다른 것은 저마다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생각의 기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갈림 길에서 시시각각 선택을 해야 하며 무엇을 기준으로 버리고 선택 하느냐에 의해 자신의 의미가 달라진다. 버리고 취하는 생각에 의해 인생이 만들어진다. 선택의 매 순간마다 가장 의미 있는 중요한 것을 취하고 버려야 될 것을 버린다면 소중한 인생이 될 것이며 자기 삶의 의미를 주는 중요한 것을 버리고 의미 없는 것에 마음을 주는 일이 계속 되면 인생은 무의미해지고 천박해질 것이다.

“신을 구름 저편에서 찾지 말라 신은 그대 안에 있다.”[피히테]
모든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고 영혼 속에는 신이 있다. 신을 알려면 영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영혼은 나를 동물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여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갖게 해주는 나의 본질이며 주인으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 선을 권하고 나눔과 소통을 위해 도덕을 강조하면서 사회속의 나로 세워주고 나를 사회와 연결해준다. 영혼은 신명(神明)이라 하여 정신을 밝혀주는 등불이고 나의 신이며 눈으로서 당연히 나의 세계를 통솔할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감정과 감성 느낌과 기분을 주관하는 몸은 삶의 현장에서 세상을 대하며 명리의 현실적 효용성을 접하면서 현실을 이유로 세속의 욕망을 강조하지만 욕망은 영육을 지치게 할뿐 인생의 해답을 주지 못한다. 
“자신의 생명이 자기의 영적 자아에 있음을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삶에 있어 악이 있을 수 없다.”[톨스토이] 나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통수권을 큰 나를 지향하는 자신속의 신인 영혼에게 줄 것인가 작은 나를 사랑하는 몸에게 줄 것인가에 따라 삶이 고귀해질 수도 천박해질 수도 있다. 몸은 명리야 말로 현실적으로 자기를 세우는 가장 확실한 길이니 눈앞의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주장하고, 영혼은 도덕을 내세워 욕심을 경계하지 않으면 더 큰 자기를 버리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서 어느 쪽의 손을 들어 주느냐에 의해 성(聖)과 속(俗), 선과 악이 발생한다. “신과 악마가 싸우고 있다. 그 싸움터는 인간의 마음속이다.”[도스토예프스키]

지자자지 인자자애(知者自知 仁者自愛), 아는 사람이라는 것은 자신을 아는 사람을 의미하며 어질다는 것은 진정한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다. [논어]
나란 앎의 주체이다. 앎의 주체인 나를 모르면서 나 밖의 사물을 바르게 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인자자애란 남으로부터의 긍정 속에서 남과 공감에 의해 소통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며, 남과 충돌하고 불통하는 자기를 거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인자지 자지자명(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아는 사람을 지혜롭다 하며 자신을 아는 사람을 밝은 사람이라 한다.[노자]
남은 나를 보는 거울이며 나는 남을 볼 수 있는 거울이다. 나를 밝게 보기 위해서는 자기 편애를 요구하는 작은 나를 초월하여 큰 나를 지향해야 한다. 자기에 대한 편애는 현자도 어리석게 만든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기 편애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자기 편애의 감정은 자신을 보는 눈을 어둡게 한다. 자기를 밝게 본다는 것은 자신의 탐욕과 추악함 어리석음과 비겁함 마음의 더러움과 용렬함을 남의 눈으로 보며 남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명리를 지향하는 욕망과 소심한 편애는 언제나 나의 눈을 어둡게 함으로서 남과의 불화를 만들고 큰 나를 훼손한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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