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18)/ 농사는 철학이고 예술이랑게요
상태바
서울떽(18)/ 농사는 철학이고 예술이랑게요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3.06.07 12: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떽 오지게 사는 이야구 18

복숭아나무                           -도종환

허영을 부리지 않는 나무에
좋은 열매가 열린다
지나치게 화려한 꽃을 피우는 일에
연연해하지 않는 나무에
실한 열매가 달린다
허약한 가지를 오직
하늘 쪽으로 세워 올리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낮은 곳에 있더라도
굵게 자라는 법을 일러주는 나무
가지 하나하나 튼튼하게 키우는 나무들이
때가 되면 알 굵은 과일을 낳는다
흙냄새 몸에 잔잔한 향기로 밸 만한 높이에
반짝이는 열매를 내어 거는 복숭아나무 같은


지가 황홀한 농사꾼이라고 헝게 ‘혹여 뭔 말이다냐’ 고개를 갸우뚱 허진 않으셨능가요잉!
서울떽 글 잘 보고 있다고 웃음시롱 이야그 허심선 암도 안 물어봉게 헐 수 없이 지 입으로 조근조근 이야그 해야 쓰겄구만이라.
지가 농사가 좋아서 시골로 들어왔다고 첫판에 이야그 혔는디요. 스물 넷 아가씨에겐 농사짓는 모든 게 놀랍고 신기허고 마구마구 가슴을 방망이질 치게 하는 매력덩어리였당게요. 가지 모를 심었더니 고 앙증맞게 올라온 보라색 꽃잎과 열매가 지를 황홀하게 하고 호박 줄기 뻗어나가며 고물고물 아기 손 같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게 하냥 신기해부렀거든요. 보랏빛 오동나무가 서있는 모습이 멋진 남자 탤런트보다 반짝 반짝 빛나더랑게요. 똘복숭아꽃이 고로코롬 황홀한 꽃인 줄도 고때 알았구만요. 쑥갓꽃, 콩꽃, 으름꽃 더덕꽃들로 내 온 맴을 채워버렸제라.
아니, 무슨 씨앗이든 흙속에만 들어가면 황홀하게 피워내는 무수한 이파리와 꽃들이 화려한 장미보다 백배 천배 이삐고 소중하단 생각과 함께 ‘땅과 하늘이 합작한 예술품들’이란 생각이 퍼뜩 들더라구요. 어메들이 들으면 피식 하고 웃어불랑가 몰라도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큰 원칙보다 요런 것들이 지를 순창에서 농사꾼으로 살아가게 했능가 몰라라. 철도 디지게 없제라잉!
지가 25년간 농사꾼으로 삼서 깨달은 개똥철학으로 말해보자믄 농사는 철학이고 예술이랑게요. 농사짓는 것은 하나하나가 허투루 되는 게 없이 온갖 정성으로 해야 되는디 험서봉게 모다 삶의 의미를 깨닫게 허는거드랑게요. 함 보셔요잉.
씨알이 땅에 떨어져서 죽어야 많은 열매들을 맺듯이 우리네 인생도 자기를 버려야 얻는 것들이 많잖아요. 빨리 크라고 모를 심어놓고 쑤욱 쑥 집어 당기면 맴처럼 모가 빨리 큰다요 죽이는거제. 아이들을 키움서 부모가 조급해서 모 잡아 댕기듯 헐게 아니라 지 스스로 땅맛도 알게 허고 벌레들과 싸움도 허고 비바람도 맞으며 햇살 받고 자라게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허는 것도 개똥철학이 되구요. 뜨거운 여름날 사래 긴 밭에 앉아서 풀을 매다보면 흘러내리는 땀을 주체헐 길 없는데 요런 생각도 번쩍하고 들제라. 요런 잡초같은 생명력이 있으면 내가 어디서든 못 살아낼까? 시상에나 팍팍한 돌맹이 틈새에서도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비집고 사는 요런 놈들도 있는디. 워메 스트레스 받지 말고 이겨보드라고 함서 지맴을 다잡아보지라. 그려도 잡초는 뿌리까정 뽑아야 싹을 없앤다는 것도 알아버링게 내 인생의 잡초가 무엇인지 돌아도 보게 되더라구요. 내 마음의 텃밭에는 도대체 무슨 씨앗이 심어져 있고 잡초는 자주 뽑아주고 있는지 생각하구만요.
요새 모를 심어진 논을 보믄 저게 언제 클지, 살아는 날지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는 풍경이 펼쳐지구만요. 여린 모들이 방방하게 채워진 물속에서 뜨거운 햇살까정 내리 쬐이면 걱정스런게 농부맴인데 정작 모들은 몸살을 앓으며 땅맛을 알아가거든요. 나중에 비바람 몰아치면 어쩌나 이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기냥 꿋꿋이 버텨내는건데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시기가 다가오면 어떻게 해줘야 좋은 부모 소릴 들을까 고민한당게요. 웃기지라.
농사일 하는 중간 중간 요런 생각이 들믄 참말로 농사짓는 사람들이 위대한 철학자들이구나 합니다. 안 긍가요? 행복하게 농사지으며 인생을 철학하도록 농산물 값이 제값 받고 유통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지구만요.
아즉도 서울떽이 농사지으며 깨달은 개똥철학은 많이 있는디라. 낸중에 쬐까씩 풀어낼꺼구만요. 도종환의 시에서 보듯이 시인들의 눈은 아조 야물딱지잖아요. ‘흙냄새 몸에 잔잔한 향기로 밸 만한 높이에 반짝이는 열매를 내어 거는 복숭아나무 같은’ 서울떽도 요런 복숭아 나무 겉은 사람이 되고 자프고만요. 그래서 황홀한 농사꾼이란 소릴 듣고 싶어라.
황홀하게 펼쳐진 자연 앞에서 허리 숙여 농사지으며 땅맛을 아는 농사꾼, 땅이 보호하고 길러내 준 열매들을 귀히 여기며 꺄르르 황홀한 웃음보를 터트릴줄 아는 농사꾼, 세알의 콩씨를 뿌려 한 알은 새에게 주고 한 알은 나눠먹고 한 알의 콩을 가질 줄 아는 농사꾼으로 살아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황홀하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서울떽이 황홀한 농사꾼이 되는 그날까지 응원 쬐까 팍팍 해주씨요잉.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조합장 해임 징계 의결” 촉구, 순정축협 대의원 성명
  • 순창군청 여자 소프트테니스팀 ‘리코’, 회장기 단식 우승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