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20)/ 아따 서울떽 내년에는 감자 심을까요? 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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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20)/ 아따 서울떽 내년에는 감자 심을까요? 말까요?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3.07.05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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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아직과 이미 사이           -박노해 지음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좋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시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해냄, 1997)

 

허벌나게 종종 거리고 다녔당께요. 고 노~오랗게 떨어지는 감꽃 목걸이도 못 맹글어 불고, 그네 옆 가장자리서 익어가는 새콤헌 앵두도 따 먹을 새도 없었당께요. 감자 캐러 오신 어메들을 유혹하려고 월매나 요염하게 익어 가는지 눈꼴셔서 못 볼 정도인 안골의 명물인 포리똥도 따~악 두 개 따먹고 지나가게 생겼당께요. 콩꽃이 흐옇게 피어나면 참깨꽃들이 월매나 이삐게 층층이 피어나는지 아시제라. 들판마다 까치 수염은 수염 휘날리며 여그서 저그서 바람에 날리는데 서울떽은 겁나게 바빴어라.

 

어메들이 옛날부터 심어 내려오던 토종종자들을 전국여성농민회에서 다시 되돌려서 토종 씨앗들을 살려 놓으려는 징허게도 장한 생각을 허고 펼치고 있거들랑요. 우리 순창지역 여성농민들은 일단 올해는 토종 씨앗들을 갖다가 얼렁얼렁 심기부터 할라고요. 겨울부터 어메들이 광에다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씨앗들 조사부터 허고 워떤게 순창의 땅과 하늘에 맞는지 자알 보관하려구요. 워쩐가요. 멋지제라. 그려서 지도 아조 쬐끔씩이지만 토종 씨앗들을 여그저그에다 간조론히 심어 놨거든요.
여주에서 온 청절미 차조, 평창의 벼락 차조, 충청도에서 느리게 익은 차조기, 황차조를 씨를 받을 맨치만 구해서 심고라, 이름도 겁나게 이삔 꼬부랑 쑤시, 저어그 강원도 평창에서 구해온 쑤시, 홍천의 시동 쑤시, 흰메쑤시를 표시나게 심었는디라, 잘 살지는 지도 모르겠어라. 울집 아그들 어렸을 때부터 심어서 입맛을 사로잡아 허천나게 먹어대던 토종 단수시를 중간에 안 심었더니 쑤시 쑤시 험서 하도 노래 불러싸킬래 작년에 어렵게 구해놓은 단쑤시 씨를 몽땅 뿌려 놓았당게요. 갑자기 짓게 된 다섯마지기 논에다 콩을 심음시롱 궁시렁 궁시렁 대면서 ‘워메, 일복 많은 년은 빼도 박도 못한당께’ 그랬당께요잉. 울 서방님 귀에 들어가라고 허는 말이여라.

토요일, 일요일날은 감자 캐느라 정신 확 뺐제라. 당산 밭과 안골 밭에다 심어 놨는디 죽어라고 풀을 세 번이나 맸는디도 고 썩을 놈의 명왈대가 제 키만큼 커버링게 어메들헌티 꾸사리 맞았제요. 다섯 어메들 중 한 어메 왈 “우리 연산에는 요렇게 생긴 풀밭은 한나도 없당께.” 큭큭. 다행히도 우리 큰 딸이 방학이라 내려 와 있고 친구도 도와준다고 내려왔제요. 고등학교 다니는 셋째 딸이랑 중학교 막둥이까정 총 집합 시켜 가지고 새복부터 시작혔는디 왼 밭이 흐겄어라. 무신 메밀꽃 피는 모습도 아닌디 경운기로 캐고 주워담는디 감자 값만 비쌌으믄 고런 오진 광경이 없을 텐디, 허망해부렀어라. 똥금, 똥금. 폭폭해서 속 터지는 줄 알았어라. 썩은것들은 별로 없었는디 멧돼지들이 뒤져 놓아서 새파랗게 변한 게 많아 쬐끔만 그려도 다~아 빼버려야 수매도 받아중게 워쪄겄어요. 아마 내년에 내가 감자 심으면 감자 새끼다라고 투덜거리신 분 겁났을꺼구만요. 전쟁 중의 전쟁이였어라. 종종거리며 죽어라  일허는디 소나기까정 내려봐요. 소나기 삼형제라고 비니루까지 다 벗겨 놨는디 주룩주룩 비오면 환장, 된장, 고추장, 워메 간장까지. 썩을 놈의 감자 땜시 씨꺼멓게 속이 타신 분들 겁날꺼여요. 서울에 계신 이삐고 멋지신 분들 존일 헌다고 순창에서 나온 감자 많이 사먹어 주씨요잉.

 

글구 블루베리 따먹느라 속이 더 씨꺼매졌걸랑요. 울 딸들과 따다보면 절반은 입속으로 절반은 뱃속으로 들어가는디, 서울떽 지라고 별수 있나요. 앵간히 맛있어야 안먹제라. 올해 추워서 블루베리가 다 죽기도 혔지만 워낙 게으른 농사꾼 부모를 둔 블루베리 인생이 가엽고 안쓰러워서 묵고 또 묵고 허는디, 그날 그날 따서 택배보내고 주문받고 허다보믄 밤마다 욱실욱실 아퍼분당께요. 한 삼일만 아무 걱정 없이 뒹굴 뒹굴 놀아불고 싶은 맴만 간절헌디, 땅마다 철철이 심궈 놓으면 호박이 뻗어 나가며 아그들 주먹만허게 맺어 놓능게 아즉도 신기혀부는 서울떽 철도 안 들었지라. 노는 땅에 들깻모들도 시집 보내야 쓰고 가을 배추랑 무시를 심어야 헝게 그럴순 없구만요. 농사꾼만이 가지는 재미와 팔자 아니겄어요. 서울떽 내년에 감자를 심을까요? 안 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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