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81) 마음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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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81) 마음의 문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3.07.25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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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들여옴과 내보냄이다. 삶의 편리와 유용을 들여보내고 불편과 무용을 내보내기 위한 장치가 문의 역할이다. 밥을 먹고 물을 먹는 것은 몸에 유용한 새로움을 들여보내는 것이며 똥오줌을 싸는 것은 몸에 무용한 묵은 쓰레기를 버림이다. 건강한 삶이란 곧 새로움을 잘 받아들이고 묵은 것을 잘 버림이며 병이란 새로움을 들이고 묵은 것을 버리는데 문제가 발생함을 의미하고 죽음이란 새로움을 들임과 묵음을 버림이 막힘을 의미한다.
마음은 늘 삶의 쓰레기를 버림으로서 필요한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불행한 사람이란 버려야할 마음의 쓰레기들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생활하다 보면 생활 쓰레기가 발생하듯이 사노라면 마음속에도 쓰레기가 발생한다. 생활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면 집안은 정리 정돈을 할 수 없고 집안은 쓰레기장으로 변하여 악취가 발생하고 몸은 병이 침범하며 필요한 물건은 불필요한 물건과 뒤죽박죽이 되어 필요할 때 물건을 찾는데 애를 먹을 것이며 삶이 엉망이 되어 나중에는 쓰레기에게 삶의 공간을 빼앗길 것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 매일 쓰레기를 버린다. 보이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면 생활을 망가뜨리듯이 보이지 않는 쓰레기인 마음의 쓰레기 또한 때때로 버리지 않으면 마음은 쓸모없는 쓰레기로 가득 차서 삶을 악취가 나게 하며 마음을 병들게 한다.
집이라는 것은 물건의 있음과 비움이라는 없음의 공간에 의한다. 집이라는 공간에 쓸모없는 물건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생활의 공간이 줄어들고 꼭 필요한 쓸모 있는 물건이 들어갈 수 없듯이 마음을 불필요한 쓰레기가 차지하고 있게 되면 삶에 필요한 귀중한 생각이 들어설 수 없다. 마음은 삶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늘 비움으로서 필요한 새로운 것을 맞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을 행복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재앙의 쓰레기를 매일 비우고 묵상하며 마음을 쉬게 함으로서 삶의 활력을 유지해야한다.
 유형의 나를 몸이라 하며 무형의 나를 마음이라 한다. 유형의 나인 몸이 몸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마음이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공간이기에 비워 있어야 마음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심한신왕(心閒神旺), 마음이 한가하면 정신이 왕성해진다. 마음이 삶의 쓰레기인 불필요한 생각들로 지치게 되면 나의 실체인 정신이 무력해진다. 마음의 쓰레기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것으로 현재의 삶 앞으로의 삶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다.
누구나 착하게 남과 사이좋게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삶이란 것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너와 나의 옳음이 같지 않고 너와 나의 바라는 것이 같지 않으며 너와 나의 이해가 같지 않고 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인간은 자주 충돌하며 충돌에 의한 속상함은 치유되지 않은 채 상처로 남으며 상처는 분노와 증오 서운함을 머금고 있어 보복의 기회를 찾는다. 재앙의 쓰레기인 보복은 보복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면서 서로의 인생을 파괴한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란 죽어버린 시간으로 살아있는 현재의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어리석음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몸의 상처는 아픔으로 몸에 부담을 주고 마음의 상처는 생각의 짐으로 작용하여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무기력하게 한다. 몸의 아픔은 다른 사람의 도움인 의술로 치료할 수 있지만 마음의 아픔은 남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어 스스로 버리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몸 밖의 짐은 쉽게 내려놓을 수 있지만 마음의 짐은 쉽게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이다. 때문에 사람은 마음의 짐에 의해 고통스럽게 살아간다. 해서 마음의 짐이야말로 진정 무거운 짐이다. 욕망은 질투와 시기 불만과 불안의 괴로운 짐을 만든다. 쾌청한 마음을 유지하려면 수시로 마음의 때를 털어내 깨끗하게 비우고 나의 잘못함을 내가 용서하듯 남을 용서해야한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괴로움으로부터 해방하여 구해내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용서란 자신을 위한 것이다.
말은 마음을 요리하는 칼이다. 조심해서 잘 다루면 맛나게 하지만 생각 없는 말은 사람을 다치게 하여 적을 만들어 자신을 다치게 한다. 말은 소리이고 소리는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 소리란 멈추면 흔적이 없어 과거로 사라진다. 자연의 이치를 터득한 사람에게 있어 말이란 소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청정한 물소리도 바람소리도 빗소리도 새소리도 벌레소리도 다 버리면서 무엇 때문에 위선과 탐욕과 증오의 독으로 더럽혀진 말을 간직하여 마음에 담아두어 자신을 괴롭게 해야 하는가. 어리석음이 휘두르는 칼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면 상처받을 이유가 없어진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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