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23)/ 시상 젤로 가깝고도 먼 남편이란 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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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23)/ 시상 젤로 가깝고도 먼 남편이란 그 이름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3.08.23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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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23

남편                       -문정희 지음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 누워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나에게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이 시를 읽고 지도 모르게 워메! 참말이네 잉! 험시롱 무릎을 탁 쳤었드랑게요. 그체라.
시집와서 요리조리 사는 것 자체가 힘들어 죽겄는디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감시롱 자기 식구들 편들 땐 진짜로 ‘남의 편’이어서 냄편인가보다 허면서 콧물 찍찍 흘림서 펑펑 울었었제라. 촌수도 없는 무촌인 사이여서 시상에서 제일 가찹고 고마운디도 등대고 돌아서면 나와는 아모 상관도 없고 쓰잘데기 없는 남자가 남편이라고 부부명언에 올라왔더랑게요. 긍께 죽자 사자 해다 바칠 것 없다고 어메들이 지나가는 바람처럼 한마디씩 허실 때는 내 남편은 안 그럴껴 험시롱 끄떡없이 지금까정 버텨왔는디라. 살다봉께 항시 마음속에서 찬바람과 봄바람을 함께 몰고 옴시롱, 고것도 시도 때도 없이 바꿔 타고 오면서도 뒤끝은 태풍이 지나간 것 같은 못 말리는 사람이 남편이더랑게요. 성님들은 안그럽뎌!
오늘 아침에도 별것도 아닌 말인디 사람 빈정을 화~악 상하게 허는 바람에 한바탕 찬바람이 휘이익 불었구만요. 워째서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순박한 것은 좋은디 꼭  ‘아’ 다르고 ‘어’ 다르걸 몰르고 함부로 말혀라잉. 글고는 10년 후에나 깨닫고라.
면사무소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디라, 그때 함께한 여자 공무원들과 시방도 가끔 만나는디 지가 단무지(단순, 무식, 과격)같아서 좋다고 하더라구요. 목소리만 들으믄 꽤 교양있는 사람 같은디 얼굴 보고 몇마디 허믄 피시식 웃음이 나게 만드는 촌 아줌마라고 허등가! 암튼 얼굴에 숨길 줄을 모릉게 싸움도 그때그때 화라락 하제라. 시방도 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에 부부싸움 한 이야그 쓰고 있잖여요.
오죽허면 울 시아버님이 너네는 워째서 병아리 싸우드끼 싸우냐고 허시질 않나 울딸들은  하여튼 둘이 싸우고 나갔다 옴서는 손잡고 온당게 허면서 웃어분당게요. 그려도 맨날 싸우는디 단무지인 저는 전술 전략을 못 맹글고 항상 파르르 노여워 했다가 푸지게 웃어불믄 끝인디, 인제 나이 들어강께는 고것도 쌓인당께요.
애기 둘 낳기 전까지는 싸우고 집 뒤안에 가서 훌쩍일 때면 뒷집 어메가 “요럴 때는 화악 뒤에서 패불고 싶제(실은 더 험하게 이야그혀서 차마 못 옮기겄어라). 그래서 전생에 웬수가 만난다는겨, 아님 새댁이 냄현이헌테 전생에 갚을 공이 많아서 시방 당하는겨” 허심서 위로를 허시는건지 긍께 더 잘허라고 협박을 허시는건지 알다가도 모를 말씸을 허실 땐 내가 미쳤지 가심팍만 쳤더랬습니다. 애기 넷 낳으니까 지 가심팍만 아프길래 수다를 풀게 되던디 여러분들은 워떠신지요?
특히 지가 기계치여서 함께 기계일이라도 할라치믄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죠. 200여미터 농약 줄을 땡기는 일을 하다보면 아조 살벌해져서 바보 멍충이 소리는 예사고 그보다 더한 소리도 나오게 되는디라. 농약할 때가 되면 농약중독이 무서운 게 아니고 또 워떠케 싸울까가 걱정됐었당께요. 징글징글허제요. 근디 이게 지만의 일이 아니고 농촌 부부 절반이 넘게 그 마음고생을 해가지고 기냥 남편들보고는 농약기계 보라고 허고 여자들이 농약 쳐붑니다. 신간 편하게.
허지만 이 남자가 계속 미워만 보이믄 어찌 살겄어요. 부부는 반쪽과 반쪽의 만남이어서 많이 살다보면 닮아간대잖어요. 외눈박이 물고기와 같이 항상 같이 있어야 양쪽을 다 볼 수 있으니께요. 가만히 쳐다보믄 측은하고 일하고 돌아와 무릎 아프다 하면 불쌍하단 생각도 들고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가 힘들구나 아프구나 싶어서 짠해지지요.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도 바로 남편이구만요, 나를 가장 많이 아는 남자. 허물도 많이 알고 내 장점도 가장 많이 아는 남자도 남편이구요, 긍께 아무리 싸워도 이뻐할 수밖에 없제요. 하먼, 하먼 고개 끄덕여지제라.
80년 결혼생활 기네스북 오른 노부부이름이 퍼시 애로스미스(105)와 플로렌스(100) 씨인데라. 부부의 이 짧은 대화 한 마디가 비법이랍니다.
“여보 미안해(Sorry)”, “그래, 여보(Yes, dear)”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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