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광진 재경순창읍청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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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광진 재경순창읍청년회장
  • 고윤석 향우기자
  • 승인 2010.11.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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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우회 미래는 우리 청년들이”

그리운 고향 부모형제 곁을 떠나 생활해온 지 어언 25년.

몸은 타향에 있지만 고향을 향한 마음은 언제나 간절하다는 김광진(47ㆍ순창읍 남계 출신) 재경순창읍청년회장은 육군 특공대 장교 출신답지 않게 자그만 체구에 소리 없는 미소를 띠고 향우회 활동에 열심인 열혈 순창청년이다. 향우회에 참석하면 고향 소식이며 사는 이야기로 끈끈한 정을 나누는 모습들이 그렇게 좋아 보였다는 그는 “향우회 미래는 우리 청년들이 책임져야 된다”는 당찬 포부와 각오를 내비치는 젊은 향우의 모습에서 우리 향우회가 지금보다 더 잘 될 것을 기대해 본다.

- 최전방 특공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데.

△ 대학(전남대)을 졸업하고 학사 8기 소위로 1986년도 임관하여 “이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라는 강원도 인제ㆍ원통 지역에서 특공대 소대장으로 근무하였습니다.

말이 장교이지 병사들과 똑같이 먹고 자면서 25킬로그램 완전군장에 해가 지고 어둑해 질 무렵 시작된 행군은 새벽녘 해가 다시 뜰 때까지 밤엔 걷고 낮에는 자면서 8박 9일 동안 400킬로미터, 천리행군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지옥훈련이었습니다. 하루 밤에 1,000미터 고지의 능선을 넘고 계곡을 가로질러 극한 상황 속에서도 기어코 목표를 돌파해내는 장병들의 표정은 비장함 그 자체였지요. 지금 생각하면 특공부대에서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몸도 마음도 더욱 강인해졌고 특히 장교로서 지휘 통솔능력을 배양한 병영생활이 전역후 사회생활에서도 누구 못지않게 단련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 초등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는데.

△ 읍내 서은마을 이장으로 27년 동안 봉사해온 아버지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냥 놀고먹지를 못 했어요.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마라” 자나 깨나 일을 해야 된다고 강조하셨어요.

중ㆍ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아카시아 잎 한망태기를 따다가 조합에 갖다 주면 200원, 농협창고에서 고추 꼭지도 따고, 도토리ㆍ탱자를 따다가 한약방에 파는 등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요. 대학시절에도 숱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도 주말이면 부모님을 도우면서 무섭게 공부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립정신이 생활화 되어 돈을 벌고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지를 일찍 알게 되었습니다.

- 재경순창읍청년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 고향 부모형제 곁을 떠나 생활하면서 어떻게나 외롭던지 집에 가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향우회가 언제 있다는 소식은 듣지만 직장에 억매여 있다 보니 마음만 간절하지 참여 하진 못 했어요. 어쩌다 행사에 참석해서 기금도 일손도 부족하여 쩔쩔매는 선배님들을 보고 마음 아플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순창청년의 한사람으로서 하루빨리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향우회 자체가 유명무실해 질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고부터 적극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 의료기기사업을 직접 경영하게 된 계기는.

△ 대학 전공이 생명공학입니다. 어려서부터 한 알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들을 직접 체험하면서 살아왔던 터라 어느 누구보다도 그 생명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989년 첫 직장인 대웅제약에 입사해 8년 동안 근무하면서 전국 각처에 있는 약국ㆍ개인병원ㆍ종합병원을 상대로 교류를 넓혀 자연스럽게 물리치료 전문 의료기기 및 기자재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99년도에 ‘현대메디칼’을 창업한지 올해로 꼭 10년입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아프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요. 몸이 아파 고생하는 환자들의 치료를 위한 물리치료용 전문 의료기기들을 수입하고 내수 공급하는 일을 합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저는 친구들보다 결혼이 빨라서 지금 외아들이 군복무 중에 있습니다. 어려 보여 간혹 총각이냐고 묻기도 하지만 특공대 장교 출신이라고 얘기하면 깜짝 놀라며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하고 기어이 생각한대로 해야지 직성이 풀리지요.

우리 향우회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후세대들에게까지 지속해 가려면 우선 청년들이 나서서 “향우회의 미래는 우리가 책임을 진다”는 각오로 최선의 다해야 합니다.

고향의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의 물리치료를 위하여 옥천요양원과 빛과 소금이라는 사회복지단체에 적지만 지원한 적도 있습니다. 크게 여유는 없지만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서 앞으로도 기회를 찾아 물심양면으로 도울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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