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26)/ 시와 같은 벗들만 있다믄 행복한 서울떽이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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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26)/ 시와 같은 벗들만 있다믄 행복한 서울떽이지라!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3.10.11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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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26

벗 하나 있었으면                 도종환 지음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보고싶은 사람 때문에 먼 산에 단풍 물드는 사랑’ 안도현의 ‘그대에게 가고 싶다’라는 시집에 들어 있는 구절인디라! 워째 가을비가 요로코롬 내리는 날에는 18세 문학허던 가시내도 아닌디 가심팍으로 빗물 스미듯 허탈함이 꼭꼭 스며오구만요. 들판 나락은 자꼬만 멸구들이 먹어강게 싸게싸게 벼를 베어 나가야씅게 농사꾼 맴은 디지게 바쁜디라잉! 노오랗게 익어가는 들깨도 벼야쓰겄고 콩밭에도 눈길 한번 줘야 허고 서숙이랑 차조들도 워쨌든지간에 마무리 혀야 쓰겄는디라잉!
그려도 7명의 엄니들과 알밤 산을 한번 다 조곤조곤 둘러보며 모다  주숴부렀고 일요일날 황토밭에서 고구마도 캐버림서 오지게 마무리는 혀서 한갓지구만요. 허지만 썩을 놈의 태풍이 뭔 존일 한다고 오능가 모르겄다고 투덜댐시롱 어렵사리 주어진 한가한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았구만요. 따악 일허기 싫을 맹큼만 요로코롬 추적추적 내리는디 산 꼭대기서부텀 단풍이 뻘겋게 물들락 말락 헝게 싱숭생숭해부네요.

2주내내 알밤에 매달리다가 순창에 제가 보이기라도 할라치면 “대체 뭔일들을 하고 다니는겨! 직업이 몇 개여!”허고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보는게 오늘만도 벌써 세사람이네요. 
25년 전 처녀 몸으로 순창에 발 디딜 때부텀 농사짓고 싶어서 서울에서 내려 왔고 지금도 천직으로 알제라. 이맘때 오정자 마을을 둘러싸고 있던 감나무 홍시 꽃들에 반했었고 알밤나무 산에서 낫질로 풀치던 머슴살이 때부터 알밤 줍는 재미가 오지다는 것도 알고라잉. 바위똑에 널던 고추랑 호박이랑 널기 위한 텃세 땜시 속이 터져 붕께 지리산 가서도 평평한 바위만 보믄 오정자로 옮기고 싶어 했을 정도로 농사꾼이당께요. 3조식 콤바인 뒤에 타면서 가마니 일곱 개씩 모아놨다가 회전과 동시에 발길질로 내려놓는 기술도 배웠고 밤마다 건조기 앞에서 나락 넣고 빼내던 고단함도 알구요. 참말로 어느핸가는 한밤중에 나락을 빼는디 비암이 고대로 말라갖고 나와서 기겁한 적도 있었당께요. 아이들과 눈 오는 날 나무 보일러 에다 고구마 구워먹으며 볏짚 눈썰매 타는 환호성 맛도 알제라. 동치미의 시원한 맛을 알려면 밭을 매는 수고로움과 때 맞춰 씨를 심고 가꾸어야 되는 농부의 심정도 알아야 헝게요. 알고보믄 아즉 모르는 게 더 많은 어설픈 농사꾼이긴 허제요.
둘째는 작년 8월부터 시작한 문화관광 해설사인디요. 한달에 열번 일허는디 아조 재미지구만요. “사~ 사랑을 헐려면 요~ 요렇게 헌단다” 노래 한 자락 허는 것도 좋구요. 전국에서 오는 여러 사람들과 매일매일 새로운 만남과 인연을 만들어가는 즐거움이 오지고 또 오지제요. 도서관에서 하는 우리고장 문화 탐방 때 만일사 길을 호젓이 거닐며 순창 고추장 전설과 동계 구미마을 전설들을 이야그 헐 때도 겁나게 행복했구만요. 모르시제라. 지가 건강하게 웃을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것들로 직업을 삼으니 월매나 황홀한지요.
세 번째로는 학원에서 중학생 아이들과 국어 수업을 하구만요. 요것은 저녁때 허는 거라 새벽에 공부하고 낮에는 일한다음 저녁때 아이들과 수업하는 거라 요렇게 비오거나 잠시라도 쉬는 날이 되면 무조건 도서관으로 직행해서 공부허는디 가끔 실수도 허지라. 넘넘 피곤헐 때 아는 내용도 기억이 안 날 때가 가끔 생길까봐 긴장허제라. 사람들이 지는 아그들 허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고 허제요.
마지막으로는 매주 금요일마다 순창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과 전통문화와 수업을 하는디 애들이 월매나 이삔지 몰라라. 2년 전 독서논술 수업할 때 아이들과 어울려 책을 읽고 책놀이를 허고 북아트를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더라구요.
글구 제가 배우는 수업이 있제요. 도서관에서 화요일마다 책놀이 수업을 듣고 있어요. 자격증반인디 배워도 배워도 재미지구만요. 상반기에는 그림책 지도자 과정 수업을 받아서 2급과 3급 자격증 합격증도 지난주에 받았당께요. 축하 좀 씨게 해주씨요. 엄청 바쁜디 듣느라 지 나름대로 쎄빠졌응게요.

아즉도 배우고 싶고 해보고 싶은게 많은 지가 지는 좋구만요. 자꼬 머무르지 않고 한발이라도 내딛으며 행복해 할줄 아는 지가 대견하구만요. 비오는 날, 쬐까 허전하고 빈것 같아도 서울떽은 기냥 이대로 황홀해 할라요. 시와 같은 벗들만 있다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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