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떽(29)/ 짐장 떡 하니 끝내놓고 첫눈 와붕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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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29)/ 짐장 떡 하니 끝내놓고 첫눈 와붕게...
  • 황호숙 황홀한농부
  • 승인 2013.11.22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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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떽네 오지게 사는 이야그 29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안도현 지음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디,
고기 좀 끊어왔다는 말
가장으로서의 자랑도 아니고 허세도 아니고
애정이나 연민 따위 더더구나 아니고
다만 반갑고 고독하고 왠지 시원시원한 어떤 결단 같아서 좋았던,그 말
남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이웃에 고기 볶는 냄새 퍼져 나가 좋을 것 없다,
어머니는 연탄불에 고기를 뒤적이며 말했지
그래서 냄새가 새어나가지 않게 방문을 꼭꼭 닫고
볶은 돼지고기 씹으며 입 안에 기름 한입 고이던 밤

가심이 콩닥콩닥해짐서 달뜨게 만들던 고 맛난 음식 냄시, 둥그렇게 앉아서 숟가락 들고 쳐다보던 지글지글 고기 구워지고 꼴깍 꼴깍 침 넘어가듯 달빛이 스며들던 어슴푸레 저녁 무렵이 생각 나시제라. 생각만 해도 오진거!
워메! 지도 아조 각단지게 꼬신 꼴을 봤구만요. 지난 주 토요일 날 짐장을 걸판지게 해부렀거들랑요. 그라고 놨더니 그날 저녁부터 비가 오고 바람 불고 천둥치고 하하하 첫눈까정  내려버링께 금시 놀부 심보가 되어불더랑께요. 아직 배추도 안 뽑아다 놓은 다른 사람 걱정이 전혀 안 되는 고 요상한 심보 말여요. 첫눈 내리는 날 강천산 해설 험시롱 비실 비실 웃음이 새어 나오더랑께요. 그 느낌 아니까~?
워쩐지 올해는 지가 빨랑 해불고 싶더라구요. 한 2주를 앞당겨서 미리미리 마음 묵고 싸목 싸목 준비를 해부렀는디 씨원씨원 해치워버렸네요. 하이구메 아모리 생각혀도 오지고 또 오져부네요. 거짓 뿌렁을 쬐까 보태믄 한 300포기의 짐치에다가 겁나게 많은 빠개지와 산더미 같은 갓지를 버무렸어라.
울 친정 엄니가 마늘도 밤낮으로 까놓고 짜잘짜잘한 준비 작업들을 모다 하고 계셨제라. 고추 꼭지들 햇살과 함께 따 놓고 표고버섯 말려놓고요. 지는 하룻밤 새복과 밤중에 마늘만 깠어라. 워디선가 주워들은 소리가 있어 써먹은 방법이 있는디라 갈쳐드릴께요. 마늘 윗 대가리만 잘라서 레인지에다가 한 3분 돌려서 보들보들하게 문질러 놓으면 잘 까지더랑께요. 마늘 두접이 금시 하얗게 까지더라구요. 생강도 독사 친구네서 토실토실헌 놈 사다가 까놓고 팔덕에서 사각사각한 배랑 사과들 사서 준비해 놓구요, 갈아서 넣어야 맛난게요. 큰 솥단지에다가 다시멸치랑 북어포 머리랑 무시, 양파, 표고 넣고 대파랑 실파 뿌리까정 함께 넣고 끓이면 꼬시고도 꼬신 냄시가 안골을 진동해불죠. 하루 종일 연타로 끓여 붑니다. 근디 아조 중요한 것은 잡젓이제라. 그 전날 영광에 가서 잡젓을 사다가 큰 솥단지에 나무 때서 끓여 놓는 일이 먼저제라.
한쪽에선 밭에서 배추 캐다 놓고 제 허벅지만 허게 커서 실헌 무시들도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두면 부~자가 돼 불죠, 올해 처음으로 묵을만 허게 뿌리 내려 준 당근과 강화순무도 정리하고 뿌랭이 배추도 뿌리와 잎을 구별해 놓으면 워메! 밥 안묵어도 배불러불제라잉! 파릇파릇한 여수 돌산 갓도 캐오고 톡 쏘는 맛이 죽여주는 겨자 갓도 맴껏 뽑아 놓고 기냥기냥 흔허디 흔하게 잘 자라서 맛있는 뽈건 갓들까지 힘껏 준비하는 게 1차 준비작업입니다.
그 다음날은 새복부터 배추를 차곡차곡 간을 절이는데 월매만큼 딱 맞게 절이느냐가 김장의 관건이제요. 항상 할 때마다 가심이 콩닥콩닥해버린당께요.
그 옛날 짐장할때 생각이 펄펄 나더랑께요. 지는 뒷 설거지랑 갖다 달라고 허시는 것들, 묵을 것 준비 허느라 짐장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헝게 도대체 이게 내 짐장인지, 넘의 맛 짐장인지 헷갈릴 때가 많아 속 터진 적이 많았거든요. 그란디 시방은 지가 한당게요. 몇 번 뒤집어 주다가 새벽녘 씻어서 물 빼 놓으면 일사천리로 버무립니다.
항아리 큰 것 두 개에다가 차곡차곡 넣어두고 빠개지도 한 항아리 묻어 붑니다. 폭설 내리는 날 꺼내 묵는 맛, 허천나제요. 올해 빨간 배추 모종이 있길래 사다가 심어 놓은 것과 무시를 한켜 한켜 쌓은 동치미 한 항아리와 기냥 하얗게 담은 동치미도 뒤안에 묻어 둔 항아리에 넣어 놓구요. 연산 모정떽이 캐주신 꼬들빼기지도 양념 많이 넣어서 담아놨제요.
강화 순무랑 무시 큰것 둥글게 잘라서 고춧가루랑 양념이랑 무쳐서 배추김치에다 중간중간 깔아놓으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제라. 워메! 긍께 지가 알건 다 알제요. 전라도로 시집와서 행복하다 안합뎌!
나무 보일러 아궁이에선 삼겹살이 익어가고 군고구마가 노오란 속살을 드러내면 시방 막 버무려진 짐치 길게 찢어서 꿀꺽 들어가면 ‘징허게도 맛나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한쪽에선 시끌벅적한 남정네들 쐬주 먹는 소리, 한쪽에선 아낙네들의 속 버무리며 하는 이런저런 말들 사이로 겨울이 성큼 다가오네요. “엄마, 울 집 김장은 꼭 마을 잔치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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