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만든 죄인…수십 년 후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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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만든 죄인…수십 년 후 무죄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4.02.21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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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7일, 수원지법은 34년 만에 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국가정보원이 제출한 녹취록 720여곳에 오류가 있어 ‘증거짜깁기’ 논란이 일었으나 제보자 진술 등 증거를 거의 받아들여 아르오(RO)가 내란음모의 주체라는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했다. 이 의원과 변호인단의 아르오 자체가 국가정보원과 제보자의 추측으로 만든 소설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의 유죄 판결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검찰과 재판부는 국정원이 지칭한 아르오 모임에서 녹취된 속기록에서 “유조창 탱크 폭파, 철탑 파괴, 후방 교란” 등의 표현이 자주 등장하고, 제보자 이아무개 등 3명의 대화 녹취록에서 북한의 3대 세습을 용인하는 듯한 표현이 등장하는 것 등을 내란죄의 증거로 인정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내란 음모 및 선동죄에 대한 유죄 판단은 법리적으로 무리한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형법 87조에는 내란죄를 ‘국토의 참절 또는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하여 폭동하는 죄’로 규정하고 있다.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칠 정도의 ‘폭동’이어야 할 뿐 아니라 일반적 추상적 합의를 넘는 구체적 모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석기 의원 등이 구체적인 내란 계획을 세웠는지, 실제 실행 능력은 있는지 의문이다. ‘장난감총’ 운운하며 어린아이 우는 소리까지 들리는 회합이 내란 음모를 위한 조직이라니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국정원은 이 사건을 2010년부터 2013년 7월까지는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으로 수사하다가 8월부터 갑자기 내란음모 사건으로 둔갑시켰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국가기관의 범죄행위를 규탄하는 시국선언과 촛불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위기에 몰리자 사건을 과대 포장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이 사건 녹취록 미리 흘리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등 정권차원의 ‘종북몰이’가 이 사건의 정치성을 말해준다고 지적한다.
2월 13일. 서울고법은 ‘유서대필’이라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강기훈 씨의 누명을 23년 만에 벗겨줬다. 무죄가 선고되자 법정에선 한숨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강기훈 씨는 유서를 대필하며 동료의 자살을 방조했다는 죄로 징역을 살았고, 그 사이에 어머니를 잃고, 암으로 수척해진 쉰 살의 병든 몸이다. 재판부는 1991년 당시의 증거를 믿을 수 없다고 이제야 밝혔지만, 누구도 사과하지 않았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60대가 된 ‘서울대 의대 간첩사건’(1976) 9명에게 38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또 같은 날 부산에서는 50대 중반이 된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32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모두 수사기관의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가 무죄 이유였지만, 부림사건 담당 검사였던 이는 되레 “좌경화된 사법부”를 탓하며 영화 ‘변호인’ 보았냐는 물음에 “반국가 선전선동영화인데 제가 돈 주고 볼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했단다.
뿐만 아니다. 2월 14일. 중국정부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검찰이 국정원으로부터 제출받아 증거로 내놓은 중국 공문서가 ‘위조’됐다고 밝혀왔다. 하마터면 서른세살 유우성 씨도 고통의 세월을 살며 훗날 눈물조차 마른 채 재심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국가로부터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불도장’이 쉽게 지워질리 없지만 억울한 누명을 씌운 국가와 관련자들은 ‘측은지심’은 없고 ‘공안지심’만 가득차서 인지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유서대필’ 사건 당시 법무부장관 김기춘은 지금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권력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터진 사건은,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조작해낸 사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아무리 똑똑한 검사라도 진실을 영원히 감출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진실을 덮으려는 정권의 폭력이 반복되도록 둘 순 없다. 국정원이나 검찰이 이런 일을 다반사로 해왔다면 대수술을 단행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기관의 부정에 대해 특검은 고사하고 국회 특위조차 열지 못하는 나라에 우리가 산다. 박근혜 정부 아래 산다는 것을 한 교수는 “야만 또는 ‘씨발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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