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사자성어에 담긴 뜻

2015-01-16     림양호 편집인

‘정본청원’(正本淸源). 대학 교수들이 새해 바람을 담은 사자성어다. 설문에 응답한 전국의 교수 724명 가운데 265명이 ‘희망의 사자성어’로 선택했다고 한다. 정본청원은 ‘근본을 바로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으로 <한서(漢書)> ‘형법지’(刑法志)에서 비롯됐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교수는 “관피아의 먹이사슬, 의혹투성이의 자원외교, 비선 조직의 국정 농단과 같은 어지러운 상태를 바로잡아 근본을 바로 세우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정본청원 다음으로 교수들이 많이 꼽은 새해 사자성어로는 어지러운 상태에서 벗어나 새롭게 나라를 건설하다는 뜻의 ‘회천재조’(回天再造)(187명). 그 다음은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의 ‘사필귀정’(事必歸正) (112명). 그 다음이 곧은 사람을 기용하면 굽은 사람을 곧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을 지닌 ‘거직조왕’(擧直錯枉)(100명)이었다. 이 모두 지난해 우리 사회가 겪은 세월호 참사 등 각종 사건 사고로 혼란스러웠던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 개운치 않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말 교수신문이 선정한 사자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도 ‘국민 고사성어’라 불릴 만큼 폭발적인 공감을 얻었다.<사기(史記)>에 실린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다’는 뜻으로 ‘고의적으로 옳고 그름을 섞고 바꾼다’는 의미다. 진시황이 죽자 환관 조고가 어린 호해를 황제로 세워 실권을 장악한 뒤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거짓말을 한 데서 유래했다. 윗사람을 농락해 권력을 휘두르거나, 흑백이 뒤바뀌고 진실이 호도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그래서일까. ‘지록위마 사례’를 정리한 시리즈가 성행하고 있다. 지록위마 시리즈 1위로는 현직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 게시판에 ‘지록위마의 판결’이라고 지목했던 ‘정치개입은 했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다’(원세훈 판결)를 꼽는다. ‘공문서 위조는 했지만 간첩조작은 아니다’(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수사검사), ‘KBS에 협조요청은 했지만 언론통제는 아니다’(청와대), ‘56조원 빚 남겼지만 실패한 자원외교 아니다’(경제부총리), ‘전시작전권(반환)은 연기했지만 군사주권은 포기하지 않았다’(국방부 장관) ‘내리라고는 했지만 비행기 돌리라고는 안 했다’(‘땅콩’ 항공), ‘원전은 해킹 당했지만 원전은 안전하다’(한국수력원자력), ‘종북몰이는 하고 있지만 정치공세는 아니다’(통합진보당 해산사태), ‘4대강 사업은 효과가 애매하지만 성과가 있다’(4대강사업조사ㆍ평가위원회) 등 갈수록 감탄을 자아내는 내용으로 시리즈를 살찌우고 있다.
사자성어는 교수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황숙주 군수도 신년사를 통해 “선공후사(先公後私), 해현경장(解弦更張)”을 제시하고 “모든 일에 공을 앞세우면 공평과 정의라는 기준에 맞게 될 것이며, 느슨하고 흐트러진 관행과 비효율은 혁파해 나가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도덕과 정의에 기초한 나라를 세우고자 하는 (미국)국민들의 열망”이 “미국의 힘”이라고 ‘미국시민정신’을 끌어와 군민이 “도덕성과 정의의 신발끈을 고쳐 매야 한다”며 “지역발전의 책임은 지역의 주인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해현경장’은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매다’라는 뜻으로 <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에서 동중서가 무제에게 올린 현량대책(賢良對策)에서 유래한 경구다. 느슨해진 것을 긴장하도록 다시 고치거나 사회적ㆍ정치적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것을 의미한다. “줄을 바꿔야 하는데도 바꾸지 않으면 훌륭한 연주가라 하더라도 조화로운 소리를 낼 수 없으며, 개혁하여야 하는데도 실행하지 않으면 대현(大賢)이라 하더라도 잘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라고 진언한 고사성어다.
2014년 갑오년은 청마(靑馬)의 해, 2015년 을미년은 청양(靑羊)의 해라고 한다. 말의 해와 함께 거짓 말(사슴)이 행세하던 세태도 역사 속에 묻히기를 바라지만 그리 될 것 같지는 않다. 반성과 성찰 없이 변화는 없다. ‘지록위마’하는 자들의 맹성(매우 깊이 반성)이 없으면 양의 해는 양두구육(羊頭狗肉ㆍ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팔다)의 해가 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려고 하거나, 자신의 진실은 말하지 않고 남의 허물만 부각시키거나, 현학적인 진리만 반복하며 보편적인 진실을 외면하는 정치행위야 말로 경장(更張)해야 한다. 자신의 솔직함은 숨기고 남의 거짓됨만 들춰내는 행위는 정당하지 못하다. 솔직하고 담대해야 의혹을 잠재울 수 있고 주변이 안정된다. 자신만 청렴강직하고 스스로 청렴강직한 자신을 비판하면 담을 쌓는 어리석음으로 어찌 ‘참 좋은 고장’을 만들 수 있겠는가. ‘해현경장’은 남(군민)에게 권하고 강요할 게 아니라 내(행정)가 먼저 수행(遂行)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