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철 모르는 삶

양장희(금과 고례) 전) 순창군의회 의원

2015-01-16     양장희 독자

철은 ① 한 해의 봄, 여름, 가을, 겨울 4 시기를 구분한 시기(계절 따라 꽃이 핀다) ② 제 철, 어떤 시기나, 때를 나타내는 말 ③ 사리를 해아릴 줄 아는 힘, 철딱서니, 철 때기 등 ※속담 : 철나자 망령(妄靈, 늙거나 정신이 흐려져서 언행이 어그러져 지는 일)
인생은 길지 못하여 곧 나이 드는 것이니 어물어물 하다가는 아무 일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나는 국가에서 공짜로 주는 노령연금 매월 7만4000원이 내 통장에 입금되는데, 언제부터인가 매달 16만원이 입금되었다. 참 좋은 노령연금제도라 할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좋아해야 할까? 댓가 없는 복지는 없고 무상복지도 지속 가능할까?
국가 재정에 미치는 부담 등 여러 측면에서 부작용은 없을까. 복지정책은 한계가 분명 있을 거다. 외부적 재원보다는 내부적 한계일 것이나 받고자 하는 나 같은 국민의 마음이 중요하다. 나와 나의 주변에 있는 지인들과 마음을 열고 들어보면 다행히 국민의 의식이 바뀌고 있음을 볼 수 있다는 게 위안이다. 예산확보 없는 복지는 있을 수 없다는 명제엔 대부분 공감하지만, 그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것은 많은 의견, 견해차가 있을 것이다.
옛날이야기지만, 야당 정치인 김산 씨가 자유당 일색인 시절 광주공원에서 야당 대통령 후보 찬조 연설한다고 라디오에서 몇 일전부터 선동하기에 촌놈이 가까스로 광주 사직공원에 갔는데 그 가 “국민여러분, 잉어를 잡아 가마솥에 물을 부어 장작불로 끓였는데 물이 따뜻해지니까 잉어가 좋다고 꼬리를 치며 놀더라”며 “가마솥 물이 뜨거워지게 끓으면 어떻해요” 하더이다. 그때 그 시절 호랑이가 담배피던 그 시절에도 선거 표를 의식해서 어둔한 주민에게 혜택을 줬나보다. 그 때 집권당 자유당 당원들이 그 흔한 고무신을 집마다 돌려주면서도 동아일보를 보는 우리 집은 외면당했다. 그땐 동아일보 고바우 영감만 보면 어쩜 그 대가리가 고무신 같았다. 가마솥에 잉어신세 생각하면서 고민해야지 하면서도 누가 내 나이를 물으면 머뭇거리다가 나 ○○년생이요. 실인즉, 지금 몇 살인지 쉽게 답을 못한다. 말하자면 건망증이나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타양인 지구에서 본래 왔던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인데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다.
장례식장에서 시신 염을 삼십년 했던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어서 갈 때 웃는 얼굴, 평온한 얼굴, 불안한 얼굴, 화난 얼굴로 다양한데 행복한 얼굴로 숨이 떨어진 사람이 가장 보기 좋다고. 배낭여행을 직업삼아 다니는 여자가 아프리카에서 기차여행을 하는데 몇 날 몇 일, 아침마다 거울을 보고 치장을 하자 옆에 있던 깜둥이 여자가 “얼굴을 왜 봅니까? 얼굴이 평온한가를 보십시오!” 하더란다. 그렇게 말하는 깜둥이 여자가 선생님이다. 과연 얼굴이 뭘까? 얼은 “넋, 혼, 꼬락서니”를 말하고, 굴은 “그의 굴곡”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얼굴 보니 죽을상이더라, 얼굴 보니 운이 트였더라 등 얼굴이 그 사람의 마음의 증표이고, 속일 수 없는 진실이다. 선거 때 마다 돈 먹은 얼굴은 솔직히 내가 그 놈의 노령연금 때문에 좀 불안하다.
타국의 예를 보자, 그렇게 잘살던 선진국이 표를 의식해 복지정책 펑펑 쓰다가 망한 나라가 한둘이더냐. 
실속없이 사는 나를 빗대어 그 누가 말하더이다. 속없이 허송세월 살다가 회갑을 맞이했는데 회갑연회 자리에서 내가 벌써 회갑이네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작심삼일이라 도로 아미타불 그 후 그가 죽어 관 뚜껑에 땅땅 못 박은 소리에 깜짝 놀라 제정신 차렸는데 때는 늦었더란다. 시계는 살 수 있어도, 시간은 살 수 없다고 그 누가 말했다. 그 귀중하고 중차대한 금쪽같은 젊은 시간표 늙어가면서 억지 주장으로 말하자면 투표권이 있다. 표가 한 장 남아 있는 샘이다. 말소된 주민등록처럼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내가 마지막 남은 표가 한 장 있다. 선거할 때 쓰는 말이다. 그 누가 말했다. “그 나라 국민 수준이 그 나라 정치수준이다”라고 대통령, 국회의원, 군수, 도의원, 농ㆍ수협장 등 그 사람들 누가 뽑나요. 우매하고 못난 우리들이 나 대신 네가 나가서 잘하라고 위임한 게 그게 선거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만들어 놓은 자식들이다. 잘못한다고 욕하고 책하지 마라. 자식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
십여년전 서울대 모 교수가 ‘공자(유교)가 죽어야 나라(민주주의)가 산다’고 했다가 유림들이 벌때가 되어 그 교수가 혼이 나갔었다. 그런데 내가 봐도 그 유교(儒敎)가 지금도 살아 숨 쉬고 건재하다. 우선 선조 제사도 그렇고 관혼상제, 혈연, 지연, 학연 등 유교와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처지다. 예를 들어 선거범죄로 내가 누군가를 고발했다며 “너는 우리 일가가 아니다. 성을 갈아라. 우리 지역에서 떠나라. 너는 모교를 등진 놈이다” 할 것이다. 유교와 정이라는 이름표가 우리사회를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놓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봄은 정시에 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자, 꿈이 있는 자에게 먼저 온다. 좌고우면(左顧右眄: 여기 저기 돌아봄) 하지 말고 나부터 선거(選擧 가려서 뽑다)다운 선거를 해야 한다.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때 군대 귀대 하려다가 깔려 구사일생으로 10일 만에 살아난 군인에게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대며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부모에게 누를 끼쳐 죄송하다고 하더란다. 우리들은 후손에게 누를 끼쳐 미안하다는 말을 할까? 철모르고 살았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