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장덕마을 격리 해제 일상복귀 움직임 활발

“죄 짓고는 못 살아, 이것이 징역살이”

2015-06-24     조남훈 기자

 

주민도 집배원도 다니던 골목, 낯설어 당혹
마을 격리로 미룬 100세 잔치 아쉬움 남아

 

“답답하다. 농사철에 농민들이 할 일이라고는 농사밖에 없잖나. 그걸 못한다. 외지에서 볼 때 순창 농산물을 상당히 꺼려하는 모양인데 그럴 필요 없다.”
메르스로 인해 마을을 통째 격리해 갇혀 지냈던 박유현(71ㆍ순창읍 장덕) 씨는 지난 19일 2주 만에 대문 밖을 나섰다. 그 시각 마을회관 앞 공터에는 마을 격리해제 전후 상황을 담으려는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집 밖을 나선 마을 주민보다도 취재진이 더 많았다. 그 자리 한편에는 이동건강상담실이 세워지고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집 밖을 나서지 못하는 갑갑한 생활을 했음에도 박씨는 “생필품을 지원해 주고 보건소에서도 오가고, 국민이 염려해준 덕에 빨리 회복했다. 감염된 사람이 더 나왔다면 격리기간도 길어졌을 것이다”며 마을 격리에 따라 마을 바깥에서 고생했던 사람들을 먼저 챙겼다.
격리조치가 해제되고 마을을 정상적으로 오갈 수 있게 되면서 장덕마을에도 활기가 생기고 있다. 농사일을 나가거나 읍내 외출에 어떠한 제한요소도 없어지니 서둘러 움직이는 주민이 있었고 또 걱정되어 일찍이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장덕마을에 거주하는 가족의 안부를 전화로 확인하며 애 태웠던 가족 친지들은 마을 격리가 해제되고 날이 밝자마자 분주히 들어왔다. 마을회관 앞 창고에서는 그동안 다니지 못했던 화물차가 들어와 물건을 실었고, 우체국 집배원도 오랜만에 마을 골목을 다닐 수 있게 됐다. 한광희 집배원은 “오랜만에 마을에 들어오니 낯설다. 건강하게만 해달라고 빌었는데 이상 없이 해제돼서 좋다”며 “(격리기간 동안) 등기나 소포 등 직접 전달해야 하는 우편물을 전달하지 못해 청년회장이 대리서명하고 전달해줬다”고 말했다.
이 기간 사람들은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박씨는 “일손이 부족해서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데 자녀들이 와서 돕는다는 사람도 있다. 동네에 노인이 많아 능률이 안 오르지만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가뭄까지 닥쳐 모든 게 정상이 아니다”고도 말했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강 씨 할머니의 사망소식 이후 주민들은 움츠러들었고 오해를 풀길이 없어져 미안한 마음을 가슴에 남기게 됐다. 마을의 한 가정에서는 지난 15일, 집안 어르신의 100세 잔치를 치르려고 했었지만 마을 격리조치로 미루게 됐다. 그 어느 때 보다 경사스러운 날을 기념하지 못한 데 아쉬움이 큰 것은 당연하다.
마을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죄 짓고는 못살겠다. 이것이 징역살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누구도 장덕마을 주민들을 탓하지 않지만 그들은 죄 지은 것 없이 죄인이 된 심정이라고도 했다. 마을이 통째로 격리됐던 2주 동안 장덕마을 주민들은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되찾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해방의 기쁨 뒤에 숨겨진 답답한 생활을 군민 모두가 위로해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