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현장 갈석…보존해야

이기수 독자(금과 송정)

2015-09-23     이기수 독자

 

88고속도로 공사로 묻힌 비석이 88고속도로 확장 공사로 햇볕을 봤다. 금과 송정마을 앞 88고속도로 공사현장서 70년대까지 존재했던 갈석 하나가 최근 발견됐다. 할매바위 뒤편으로 50미터 부근 아미산 수로공사 구간에서 나왔다. 80년대 고속도로 건설 당시 땅에 묻혔던 것이 이번 공사로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추정된다.
송정마을 어르신들은 금왕리는 옛 송정마을의 지명으로 추정했다. 조선시대 행정 조직이 ‘조정, 관찰사, 부, 목, 군, 현, 방, 리, 동’으로 구분된 사실에 비춰보면 당시 송정마을의 비중울 엿 볼 수 있다.
조선 후기는 실학이 성행했었다. 정조와 정약용 등에 영향을 준 처사 송광연 순창군수는 반상의 차별을 없애고 탐관오리를 일소하여 백성이 주인 되는 대동세상을 주창했다고 한다. 그의 주장은 후일 동학농민혁명에 영향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순창에서도 송정마을을 무대로 민족의 사상을 설파하였으며 백성들의 희망이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정조는 ‘보국안민’으로 우리 식의 실학적 개혁을 단행하였으나 보수 영남파의 벽을 허물지 못했다.
핍허루(정), 송광연, 여러 개의 불망비 등 우리 고장, 순창의 민족적 기운의 진실 등을 더 이상 감추지 않기 바란다.     
<갈석(碣石)> : 무덤 앞에 세우는 작은 비석. 가첨석(加檐石)을 얹지 아니하고 머리를 둥그스름하게 만든 것을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