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에 낭중지추 필요하다

2015-11-11     림양호 편집인

요즘 담양과 순창을 비교하는 주민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한 달 이상 열렸던 ‘담양 세계대나무박람회’와 시월 마지막 주간 끄트머리 4일 동안 열린 ‘순창장류축제’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지나쳐 보인다. 또 이미 먹을거리 수준에서 한참을 앞서 있는 것으로 보이는 담양과 순창 음식문화나 그 음식을 파는 곳의 규모나 시설을 직접 비교하는 일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읍내 목욕탕 뜨거운 탕에 몇 사람이 둘러앉았다. “광주가다 담양에 들려 대나무박람회를 둘러봤는데 넓고 훤해서 구경하기 편하더만”, “그려 스케일이 달라. 주차장 허며 부스 배치, 안내판 설치… 괜히 부럽더라고”, “한 달 내내 인파가 몰려, 사람이 많으니 뭐, 조류독감인가 인프렌잔가 그거 없어져 버렸어. 환자 한사람 생겼다고 동네 막던 순창과는 아예 비교도 안 돼.”

돈가스를 좋아하는 여중생 딸을 둬, 담양 메콰세타이어 길에 있는 돈가스 식당에 가끔 간다는 한 주민은 “지난 저녁 백야재를 넘다 큰일 날 뻔했다”며 “장류축제 시작 전에 어렴풋이 정리된 차선이 다시 엉망이 되어 마주 오는 차와 부딪칠 뻔 했다. 같은 도로공사 구간인데 담양은 공사하는 것조차 알 수 없을 정도인데 순창 길은 왜 이리 불안하지 모르겠다”고 투덜댔다.

군이 장류축제장소를 확대했다고 선전한 일품공원에 다녀온 기자가 찍어온 사진을 보니 한심하다 못해 부끄럽고 원망스럽다. 우리 군민을 얼마나 무시하면 저리 엉성하고 조잡하고 ‘안하무인’인 공사를 할까? 그 부실시공을 지적하는 군 의원 면전에게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인상을 팍팍 썼다는 군청 담당의 눈에는 저 보도블록 사진이 ‘예술작품’으로 보일까봐 두렵다.

주민들은 따라 잡을 수 없는 지역의 정책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 흉내도 낼 수 없는 대우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눈에 보이는 것이 볼썽사납지 않고, 일부러 들춰본 것이 아니라 보여줘서 들여다 본 것이 심하게 치우쳐 있지 않으면 오케이다. 우리 지역 책임진 높은 양반들이 잘 알아서 할 거라 믿고 박수치다가 뒤통수 맞는 일이 잦아지기에 눈 크게 뜨려고 할 뿐이다.

경천 고향의 강 사업에 들인 돈, 지역 마을종합개발사업에 박은 돈, 농공단지 조성 후 미분양 돼 박힌 돈, 기업유치ㆍ스포츠마케팅에 물 쓰듯 없앤 돈, 개인 땅ㆍ묘지까지 길 내주며 버린 돈 등에는 주체 못하는 부자들의 돈 뿐 아니라 하루하루 연명하기 힘겨워 토끼 같은 자식 입에 눈깔사탕 한 개 마음 놓고 넣어주지 못한 서민들의 피 같은 돈도 섞여있기 때문이다.

요즘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 제목이 <송곳>이란다. 대개 많은 사람들이 보는 드라마는 그 시대의 불편한 일을 담고 있다.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송곳>이 된 이유는 그가 처한 현실이 부조리해서다. 드라마에서 그는 스스로를 ‘걸림돌’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지극히 상식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상식적이지도 공평하지도 않은 현실에서는 그가 삐죽 튀어나온 존재로 보일 수밖에.

사회에 가득한 비리와 부정을 못 본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외면했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엄청난 폭력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부터는 모른 척하지 않는 양심과 용기가 바로 <송곳>이다.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는 결단. 담담하지만 지나치거나 치우치지 않는 자세로 자신이 속한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송곳>이 늘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 참 좋아질 수 있다.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능력은 있지만 모두와 조화하여 살아가지 못하는 이를 지칭하며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우리 지역에, 우리 주변에 저 같은 <송곳>이 많아지고, 연간 수천억원을 쓰는 자치단체에도 따뜻하고 정의로운 <송곳>이 생겨나 지역 주민의 삶이 행복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