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고지우/ 그가 있어 뒷걱정이 없다

뒤 후 後 돌아볼 고 顧 갈 지 之 근심 우 憂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43

2016-12-21     정문섭 박사

《위서ㆍ이충전(魏書ㆍ李沖傳)》에 나온다. 사아출경후고지우(使我出境無後顧之憂) : 내가 정벌에 나설 때 뒤를 돌아보게 하는 근심이 없게 하였다.
예전에 대통령의 외국 순방 중 총리가 지방에서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군청 사무실로 피신하여 6시간 30분 동안 갇힌 일이 있었다. 국가 운영을 잘못한 총리가 그리되어도 싸다고 할 수도 하겠지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국가 공백을 초래한 사건으로서 에워싼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총리가 그 상황에서 자기 몸이 다칠까 봐 겁내어 바로 나오지 않고 긴 시간을 기다렸다가 나왔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나라를 맡기고 갔으면 2인자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여야 할 것인데도 말이다. 과감히 뛰쳐나와 국정의 공백을 없앴어야 한다고 묻고 싶은 것이다. 그가 국회 답변에서 ‘군대는 강하고 담대하고 소신이 있어야 한다’고 대답하고, 두드러기 질환으로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고 하는 보도를 접하니 그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픽 웃음이 났다.
남북조(南北朝, 420-581)시대 위(魏)나라에 이충(李沖)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위의 황제는 효문제(孝文帝)였는데 겨우 다섯 살에 즉위하였으므로 태후(太后) 풍씨(馮氏)가 잠시 섭정을 하고 있었다.
이충은 태후와 효문제를 도와 적극적으로 삼장제(三長制)를 실시하였다. 즉 다섯 가구를 인(隣)으로 하고, 다섯 인을 리(里)로, 다섯 리를 당(黨)으로 하여 각각 하나의 장(長)을 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조세제도를 건의하여 제후들의 재산 축적을 제한하고 나라의 수입을 늘렸다. 이에 효문제와 풍태후는 늘 이충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훗날 이충은 효문제를 보좌하여 법률을 정비하고, 낙양의 새로운 도시 계획 등을 주관하였다. 특히 효문제는 군대를 이끌고 남쪽 정벌에 나설 때 마다 조정의 모든 일을 이충에게 위임하였다. 이충도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일을 처리함으로써 효문제가 안심하고 정벌에 임하도록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충이 갑자기 병이 들어 죽었다. 문제는 이처럼 나라를 위하여 충성을 다한 훌륭한 신하를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크게 상심하여 그의 분묘 앞에 나가 통곡하며 말했다.
“짐이 그간 인품이 훌륭하고 나랏일에 충실한 이충에게 국사를 맡겼더니 모든 일을 너무나 잘 처리하여 주었다. 특히 짐이 밖으로 나가 전장에 있더라도 전혀 뒷걱정을 하지 않게 해줬는데 이제 갑자기 병이 들어 죽으니 내가 어찌 상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중의 걱정, 장래에 대한 근심, 뒷걱정이라는 뜻으로 훗날 사람들은 자기를 대신해 일을 잘 해주는 부하를 칭찬할 때 비유하여 썼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 외국 순방기간 총리가 국내의 복잡한 일을 잘 처리해 주었을 경우 ‘후고지우가 없게 해주어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부정적인 의미로 어떤 일에 방해가 될 만한 것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