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샘물은 순창판 봉이 김선달인가

2017-01-18     조남훈 기자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공장이 거의 없는 쌍치면은 군내에서도 꼽히는 청정지역이다. 해발 300미터의 준고냉지에서 자라는 각종 농산물은 타 지역보다 값을 더 받는다. 일찍이 돈 버는 방법을 알았던 주민들은 특용작물을 재배해 군내에서도 비교적 생활수준이 풍족한 편이다.
쌍치면 주민들이 왜 잘 살게 됐는지 이해하려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쟁을 겪는 동안 쌍치면은 모든 건물이 불에 타고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 영광정이었다. 초가삼간을 다시 올리고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며 사는 동안에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군에서도 추운 동네다보니 영농활동이 가능한 기간이 짧았다. 물 빠짐이 좋은 쌍치면의 지형은 논농사보다 밭농사에 적합했다. 그러나 밭작물이 나락보다 대우를 못 받았던 시기는 꽤 길었다.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했던 쌍치면 주민들의 근면은 이 시기를 거듭하며 단련됐다. 그리고 논농사가 내림세로 접어들고 밭농사가 돈이 되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쌍치면 주민들의 생활은 매우 좋아졌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단련된 근면함이 지금의 쌍치면을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난 1997년 쌍치농협이 순창농협에 합병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주민들이 있는 것도 이 같은 생활수준의 변화를 반증한다.   
쌍치면 주민들의 근성은 때로 지역환경을 보호하는 데 크게 작용했다. 주민들은 지난 2007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양계장 전쟁을 치렀다. 각각 운암리와 양신리에 들어올 예정이었던 양계장을 막아냈고 이겼다. 당시 주민들은 트랙터를 끌고 군청까지 오는 등 격렬히 저항했고 이런 여론에 밀린 두 업체는 사업추진을 포기했다.
이 사건은 쌍치면 주민들에게 있어 승리의 역사이자 이기는 법을 알게 해준 중요한 경험이 됐다. 물론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몇 명은 매우 힘들었다면서도 가치 있는 싸움이었고 주민여론이 확실히 우리를 지지해주고 있어 가능했다고 말했다. 순창샘물의 추가 시추를 허용하지 않고 공장을 기어이 폐쇄시키겠다는 말은 허투루 들을 것이 아니다. 지하수가 고갈돼도 꾹꾹 참아왔던 쌍치면 주민들은 여론무시행위를 좌시하지 않고 뒤집어 엎을 기세다.
아직 공장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를 실감하지 못한 듯 하다. 순창샘물은 뒤늦게 환원사업을 추진하고 공청회를 열겠다는 의사를 주민들에게 전했지만 이미 물은 엎어진 뒤,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공장장은 이런 여론을 전하고 고민하는 대안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법적으로 하자 있는 일도 아닌데 뭐가 문제인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잘랐다. 지난 양계장 반대투쟁에서 추진업체가 어떤 법적 하자를 가지고 있어 주민들이 이긴 것은 아니다. 생존권은 언제나 법적 타당성보다 우선돼왔다. 주민들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순창샘물의 지역 주민 대하는 자세는 알 만하다. 순창샘물이 쌍치면 지하수를 대하는 관점이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 대하는 관점과 같은 것은 아닌지 자뭇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