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그리고 10년 후
2월 13일은 기자라는 명함을 가진지 정확히 5년이 되는 날이다.
5년 동안 기자로서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니 특별한 흔적이 없어 보인다. 뭔가 특별한 것을 남기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기자라는 명함만 있었을 뿐 기자로서의 역할에는 충실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개인적인 욕심을 채워본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기자로서 할 일을 다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야 하고, 드러난 어두운 면을 밝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있지만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때로는 게을러서, 때로는 귀찮아서 어두운 면을 보고도 못 본 체 한 적은 없는지, 현실과 타협하면 안 된다고 머릿속으로 되뇌면서 현실이라는 핑계로 의무를 져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그 부역자들은 그 지위를 이용해 온갖 이권에 개입하고, 혈세로 주머니를 채우며 군림하듯 권력을 과시했다. 이들의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을 밝혀내고 국민의 눈을 뜨게 만든 것은 결국 갈기갈기 조각난 문서 조각을 일일이 손으로 맞춰 그 내용을 파헤친 한 언론과 소속기자들의 ‘대단하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한 노력과 열정, 끈기. 무엇보다 기자로서의 사명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부고 게시판을 작성하며 한 장례식장의 부고 내용 가운데 낯익은 이름이 하나 눈에 띠었다. 풍산 한사마을의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에서 생활하시는 어르신의 성함이었다. 혼자 그 위태로운 집에서 생활하면서 제도의 허점 때문에 제대로 지원조차 받지 못하고 생활하시던 어르신이었다.
그 어르신의 이야기를 처음 보도한 것은 2012년 11월이었다. 처음 취재 당시에도 어르신의 연세가 워낙 많았기에 직감적으로 그 어르신일 것 같다고 느꼈다. 며칠 뒤 어르신에게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던 군 공무원에게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처음 보도 이후 어르신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그 위태로운 집에서 어렵게 생활하셨을 것이다. 기사가 나가고 어르신의 사정이 알려지며 여러 단체에서 도움의 손길은 있었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았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더 취재를 했더라면 조금은 나은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왜 끝까지 관심을 갖지 않았을까. 마음 한편으로 기사를 한 번 냈으니 그 후는 군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기자로서 사명감이 많이 부족하지는 않았는가.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결국 5년의 기자생활을 돌아본 후 남은 것은 후회와 ‘기레기’라는 호칭만은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일단 앞으로 5년 더 기자로서의 길을 걸으려 한다. 5년 뒤, 기자로서의 10년을 뒤돌아 봤을 때 ‘기레기’라는 호칭에서 벗어나고, 한사마을 어르신 같은 상황을 다시 만들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