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자치, 참여 민주주의

2017-02-15     림양호 편집인

한국의 지방자치 역사는 아프다. 대한민국 초대 헌법에 의해 1949년 최초의 지방자치법이 제정되었으나 이승만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당했고, 이듬해 발발한 한국전쟁에 밀려 최초의 지방의회는 1952년에 구성되었다. 1960년 4ㆍ19 혁명 이후 제 2공화국에서 전면 실시되었으나 이듬해 5ㆍ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는 지방의회를 강제 해산하고 지방자치법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1980년 제5공화국 헌법은 지방자치제를 실시하되 시기는 법률로 정한다며 무기한 유보했다. 권위적인 군사정권에 의한 중앙집권과 관치시대가 30년 이상 지속됐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초석은 깨져버렸다. 목숨을 건 시민들의 1987년 6월 항쟁은 대통령직선제와 함께 지방자치를 부활하는 헌법 개헌을 이뤄냈다.
1991년 선거로 지방의회는 구성했지만,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연기됐다. 또다시 저항과 투쟁이 있었고 1995년에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해 지방자치시대가 열리게 됐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목숨을 건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으로 쟁취됐다. 1995년을 지방자치 부활 원년으로 치면 올해로 22년이 되었다. 하지만 중앙정부의 권한 이양이 더디고 지방재정이 갈수록 악화되는 등 아픈 역사에 비해 지방자치의 진전은 매우 미흡하다.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를 등한시했고, 갈수록 국비 의존도가 높아지는 지방재정은 중앙정부의 간섭을 더욱 강하게 했다. 중앙정부의 지침 하달 관행은 여전하고, 지방정부의 상향식 정책 생산은 나쁜 권력의 타산에 따라 거절되고 때론 고발되는 실정이다.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 삼권분립, 비판과 토론 등 민주주의 작동에 필요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실현됐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접한 민심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참여와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광장에 모인 천만 시민은 ‘제대로 된 민주국가는 국민이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할 수 있고, 정부가 여론을 존중하고 소수 의견도 존중되며, 다양한 정치적 입장들이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실질적 민주주의 보장된 나라’라고 말한다. 시민들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모두 썩어 문드러졌다며, 지방정부에서는 민주주의 헌정질서가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고 지방자치와 분권은 허울만 남았다고 한탄한다.
중앙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견제, 중앙권력의 시도 때도 없는 겁박에 눌려 눈치나 살치는 지방정부와 지방정부와의 관계에서 힘의 균형을 잃고 지방정부의 눈치나 살피는 지방의회를 보면서 실망한 국민들은 지방자치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지방자치 인식조사에서 시민 80%가 지방자치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행정 일원화, 부와 권력의 중앙 집중, 계층ㆍ세대간 갈등 심화, 경쟁 강요 등 퇴로가 없어 보이는 중앙보다 아직 이웃 공동체가 살아있고, 경쟁보다는 상생과 나눔, 갈등보다는 평화와 협동이 있는 지역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시민들은 지방자치가 지역을 바꾼다며 진정한 풀뿌리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주민참여를 돋구고 있다.
실제로 지방정부의 독선과 권위는 하늘을 찌른다. 주민은 안중에 없고 대의민주주의는 실종된 지 오래다는 비판이 시들지 않는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일삼는 편 가르기, 여론조작 등의 행태가 지방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찌 보면 좁은 지역에서 얽힌 인맥과 견제 세력이 없는 지방이 더 무소불위한 제왕적 권력이다. 더구나 야합, 나눠먹기, 제 식구 챙기기 등 자기자리 보존을 위해 악을 쓰는 권력 주변인들의 욕심은 ‘잔인무도’하게 보인다. 지방권력의 큰 축인 공무원들은 주민 편의와 권익보다 시장(업자)을 대변한지 오래고, 자치단체장은 그들 뒤에 버티고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적은 청와대에만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발 딛고 사는 지역에도 널려 있다는 여론이다.
나라개혁을 위해 든 촛불을 지방변화를 이룰 때까지 밝히기 위해 양심적인 주민 규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향유하기 위해서 시민의 참여와 비판이 있어야 하고, 그럴 용기와 의지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퇴보할 수 있다며 민주주의가 퇴보하면 상명하복, 교약획일적 관료행정이 지배하게 된다는 각성이다. 열악한 지방자치 환경과 각박한 세상살이지만 이 악물고 아픈 지방자치 역사를 대안적으로 바꾸려면 치열하게 활동해야 한다. 일상의 저항이 된 작금의 촛불을 지방권력을 향해서도 들어야 한다. 우리 지역, 내 곁의 ‘박근혜-최순실’은 없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지방정부 주변에 나쁜 무리가 없어야 지방정부와 의회가 주민 편의와 권리신장, 복지 확대에 힘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