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171) 사랑에 대하여

2017-04-05     박재근 고문

숲속에서 빛을 볼 수 없는 나무는 죽는다. 나무가 굽어서 자라는 것은 빛을 보기 위해서 이다. 빛과 따뜻함은 모든 생명의 기본 조건인 것이다. 따뜻함이 없는 세계는 겨울나라와 같다. 사랑은 영혼의 태양이다. 우리 몸에 태양이 주는 빛과 따뜻함이 없이는 살수 없듯이 우리 영혼에 사랑이라는 빛과 따뜻함이 없다면 그 영혼은 병든 영혼이다. 지혜만 있고 영혼 속에 남에 대한 사랑이 없는 인간은 사악한 길로 가기 쉽다. 영혼 속에 사랑이 없는 지혜는 서로를 상하게 하는 지혜, 거짓지혜로 세상을 재앙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들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하면서도 기아로 죽어가는 인간에 대해 외면하면서 자신을 죽이는 군병을 제도화 하며 무력을 자랑하고 무기경쟁에 열중하고 있다.

인간의 이성은 신의 속성인 신령한 지혜로 천리를 읽을 수 있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지만 욕심의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여 재앙을 만든다. 눈이 없어 길을 못 보는 욕심은 부귀영화의 탐욕과 비생산적인 경쟁의식이 낳은 적대와 증오, 천박한 사치에 대한 기호, 하찮고 무의미한 것에의 집착으로 인류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세상을 어둡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사랑이라는 영혼의 태양이 있어 인간의 약점과 결함을 보완해주고 상처를 치유해주기 때문이다. 사랑은 암울한 인생에 빛을 주어 길을 찾게 해주며 따뜻함을 주어 인정이 자라게 한다. 사랑이란 인간의 약점과 결함에 대한 보완이며 관용이다. 인간은 아무리 완벽을 추구해도 완벽해질 수 없는 불완전한 약점과 결함 때문에 관용이란 따뜻함이 필요한 것이다.

사랑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진실한 사랑은 꾸미지 않는다. 진짜 금은 도금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참 사랑은 겉과 속이 똑 같다. 참사랑은 대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영혼의 샘에서 나오고 내면 정신의 성숙에서 만들어진다. 하여 잘 익은 벼이삭처럼 겸손하다. 상대의 아름다움에서가 아니라 내 마음의 아름다움에서 나온 사랑은 줄수록 풍성해짐으로 주려 할 뿐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순수한 사랑을 돌려받는다. 도덕적 사랑은 화복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랑, 천리를 따르는 사랑을 뜻한다. 사랑은 대상을 배려하기 때문에 인간 사이의 벽을 허물어 소통하게 한다. 세간에서 말하는 이타적인 사랑이란 보다 큰 자기사랑의 근본이다.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며 주려할 뿐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배신당하지 않는 사랑이다.

선한 사랑은 이성에 의존하여 변함없이 지속적이며 도리로 길을 삼고 덕으로 몸을 삼기 때문에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아 남으로부터 지지를 받는다. 마음을 비워 세속적 이익을 탐하지 않고 물질적 손익에 마음이 상하지 않기 때문에 다툼과 증오가 없고 적이 없는 사랑이다. 감정에 의존하는 사랑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말에도 희로애락에 출렁거린다. 대상에 의존하는 사랑은 주려하지 않고 받으려 하며 이해득실에 따라 대상을 바꾼다. 대상은 때와 장소 상황과 형편에 따라 변하고 감정은 대상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면서 사람을 속인다. 눈에 보이는 물질을 정신보다 우선시하는 사랑은 눈앞의 욕망과 외모의 변화에 의해 배신하는 사랑이다. 감정에 예속된 사랑은 변덕스럽고 세속적 손익에 의존하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물질지향의 눈에 보이는 가치를 추구하는 사랑은 사치스럽고 탐욕스러우며 변덕스럽고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사랑은 상대를 소유하려하고 상대가 자신에게 종속되기를 요구함으로서 상대의 마음을 속박하는 사랑이다. 이해득실과 상대의 외모나 그가 가진 사회적 자산 등 손익을 계산하는 사랑은 거래일뿐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성쇠가 유전하고 미추는 변한다. 사람을 존귀하게 하는 것은 신의 속성을 가진 보이지 않는 영혼이다. 영혼에서 나온 사랑이라야 사람을 아끼며 귀하게 여기고 지속적이며 항상적인 사랑이다. 선한사랑은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것이며 기분에 속한 것이 아니라 도리에 속한 것이다. 몸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혼에 속한 것이며 신을 지향하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가치를 추구한다. 대상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 사랑이 아닌 대상에 상관없는 절대적 사랑이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