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4) 혜초스님 오언시

글 그림 : 조경훈 시인 한국화가             풍산 안곡 출신

2018-03-08     조경훈 시인

 

君恨西蕃遠(군한서번원) 
余嗟東路長(여차동로장)
道荒宏雪嶺(도황굉설령)
險澗賊途倡(험간적도창)
鳥飛驚峭嶷(조비경초억)
人去偏樑難(인거편량난)
平生不椚淚(평생불륵루)
今日灑千行(금일쇄천행)

 

그대는 서변길 먼 것을 한탄하나
나는 동쪽길 먼 것을 슬퍼하노라
길은 거칠고 산마루에 눈도 쌓였는데
험한 골짜기에는 도적도 창궐하네
새도 날아오르다 깎아지른 산에 놀라고
사람은 좁은 다리 건너기 어렵구나
평생에 눈물 흘리는 일 없었는데
오늘은 천 줄기 눈물 흘러내리네

혜초(慧超, 704-787)는 지금부터 1300여년 전에 사셨던 신라의 승려다. 지금 같으면 우주여행에서나 비견될 수 있는 부처님이 나시고 수행하셨던 곳, 인도 주변의 7개국 수 천리를 수행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해 두었다. 이 기록이 1908년 돈황석굴에서 발견되어 ‘왕오천축국전’이라는 책과 혜초 스님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왕오천축국전’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혜초스님은 새로운 미지의 세상, 진리와 깨달음을 찾아 단신 이역만리로 건너가 그곳 여러 나라를 수행하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셨다.
위의 시는 혜초스님이 토화국으로부터 동쪽으로 7일을 가면서 서변으로 가는 사신을 만나 간략하게 ‘오언시’를 짓는다고 후기를 남겼는데, 오랜 여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과 고행이 배어있다. 한편의 시와 기록이 1300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는 기록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해준다.
여행지가 ‘티벳’ 어느 곳인지는 몰라도 ‘생 눈물 흘리는 일 없었는데 오늘은 천 줄기 눈물이 흐르네’에 접하면 나도 어느덧 여행자가 되어 그곳 바람이 내 머리를 스쳐 서늘해지고 멀리 걷고 있는 혜초스님의 펄럭이는 옷자락이 잡힐 듯 스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