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돌멩이 대화법

백제문학 신인대상 수상작

2018-07-19     박진희 시인

말이 생기기 이전엔 돌멩이로 대화를 나눴다는데
돌이 가진 질감 색감 무게감으로 마음을 나눴다는데
우울한 날 꽁무니로 늘어진 그림자 같은 돌
상처 받은 날 채석장에 막 따낸 모가 도사린 돌
즐거운 날 아가 볼 같은 돌을 쥐어줬다는데
아비와 자식이 주고받은 돌의 무게는 어떨 것이며
자식은 평생 그 무게를 짐작해야 했겠지
말이 닿기 전 모양과 무게가 먼저 닿아 느낀다는 게
행간을 읽어나가는 것처럼 진중했겠지
무게를 실을 수 없는 말
가벼운 말의 시대에
가만히 나의 돌멩이를 주우러 간다
내게 원시적 직감이 남아 있길 바라며
누군가의 돌멩이었을 말들을 하나씩 느껴보기로 한다
난 말 없는 시대가 답답했을 거라 여겼지만
말의 시대가 더욱 갑갑함을 느낀다
말 속에 가두어진 실제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얼마를 걸어야 빛이 나오는 지 알 수 없는
동굴 속 미로를 걷는 것과 같았으므로
말은 어떤 감정이든 순식간에 숨겨내는 가면이므로
말에 대해선 감각을 가지지 못한 난
깊이를 알지 못하고 섣불리 뛰어들기도 하는데
아무리 몸을 낮추어도
온 몸을 담지 못하는 개울임에 맥이 빠진다
누군가도 내 말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해
돌아섰을 것이다
비틀거리는 아빠의 손에 들린 하드를
잠결에 일어나 받아들던 차디찬 기억
소나기를 맞고 돌아온 내게 건네던
김이 오르던 설탕물
언 손등을 감싸던 입김까지
손에 쥐어진 모난 돌조차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동안 둥글었던
우리가 주고받던 돌멩이대화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