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달의 참말과 막말

2019-04-17     림양호 편집인

4월이면 인용되는 시, 토머스 엘리엇의 <황무지>를 기억합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이 자라고 / 추억(기억)과 정염(욕망)이 뒤섞여 / 잠든 뿌리가 봄비로 깨어난다 / 겨울이 차라리 따뜻했었다 /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 가냘픈 목숨을 마른 알뿌리로 먹여 살려 주었다”
‘4월은 잔인한 달’ 왜요?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드는 달이 왜 잔인한 달일까요? 시인은 만물을 겨울잠에서 깨워 주는 소생의 달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며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어주고 가냘픈 목숨을 마른 알뿌리로 먹여 살려’준 겨울이 봄보다 좋았다고, 눈이 대지를 덮어 세상의 고통과 더러움을 감춰주고, 비축해 둔 식량으로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고 노래합니다.
사실 봄철에 새싹이 피고 새움이 돋는 것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씨앗과 뿌리를 건사해 온 겨울의 기나긴 산고 때문입니다.
어찌 되었든 4월에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잔인하고 혹독합니다. 수만 명이 희생당한 제주 4.3 민중항쟁(1948), 많은 젊은 학생들이 죽고 다친 4.19 혁명(1960), 꽃다운 청소년과 시민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4.16 세월호 참사(2014). 차마 그 항쟁, 그 참사의 속살을 들여다보기조차 두렵고 무섭고 슬퍼, 무자비한 당시의 정권을 한없이 성토하고 원망합니다.
“다시 4월입니다. 71년 전 제주도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학살이 있었듯, 5년전 4월 제주로 수학여행 가던 304명의 단원고 학생과 시민들에게 국가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구조를 방해했던 것이 정부이었습니다. 정부는 왜 침몰하는 배와 승객을 버려두었을까요. 제주 4.3 희생자들의 명예회복과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만이 그동안 역사 속에서 피로 지켜온 한반도의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1948년 제주 4.3 항쟁과 2014년 4.16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기억해야 할 이 나라의 역사입니다.” 지역의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제주 4.3 동백 발화 평화 챌린지’에 올린 글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먹고, 찜 쪄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먹고 진짜 징하게 해쳐 먹는다. 그들이 개인당 10억의 보상금 받아 이 걸로 이 나라 안전사고 대비용 기부를 했다는 얘기 못 들었다. 귀하디 귀한 사회적 눈물비용을 개인용으로 다 쌈 싸먹었다. (중략) 세월호 사건과 아무 연관 없는 박근혜, 황교안에게 자식들 죽음에 대한 자기들 책임과 죄의식을 전가하려 하고 있다. 보통 상식인이라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할텐데 이 자들은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좌빨들한테 세뇌 당해서 그런지 전혀 상관없는 남 탓으로 돌려 자기 죄의식을 떨어버리려는 마녀사냥 기법을 발휘하고 있다. (중략) 에먼사람한테 죄 뒤집어 씌우는 마녀사냥은 사회를 병들게 하고 해당 자를 죽이는 인격살인이다. 그래서 못 봐주겠다. 정 의심스런 거 있으면 당신들이 기레기를 꽉 잡고 있으니 만천하에 폭로해라. 대신에 그거 조사해서 사실무근이면 지구를 떠나라. 지겹다.” 전 국회의원이고 현 자유한국당 부천 소사 당협위원장인 차명진이 사회관계망에 올린 망언입니다. 그는 이 망언을 올려 서울대 정치학과 79학번 동기 카톡방에서 쫓겨났습니다. 정진석 국회의원(자유한국당ㆍ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마찬가지로 막말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많이 배우고 똑똑하다’는 정치인들 하는 짓이 참 잔인하고 참혹합니다. 그러니 “인간이길 포기한 차 전 의원은 유가족에게 참회하며 남은 인생 조용히 살라”던가 “(자유한국당)청소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벌레가 들끓는 것”이라는 비난이 빗발치고, 그래야 마지못해 사과하는 정당들 꼬락서니가 또 부끄럽고 잔인해 참혹해집니다.
4월 16일, 전국 곳곳에서 세월호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날 저 ‘잘나고 못된’ 정치인의 막말에 치민 울분을, ‘잊지 않겠다’며 해마다, 기회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이 땅에 정의를 세우려고 애쓰는 지역 시민활동가의 글을 보며 분노를 삭입니다. 세월호희생자를 기리는 노란 리본과 산재 노동자를 애도하는 보라색 리본을 꼭 곁에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