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226) ‘나’뿐만의 나를 죽여야 참 ‘나’가 산다

2019-06-26     박재근 고문

“삶을 죽이는 자는 살고 삶을 살리려 하는 자는 살지 못한다.” (장자)
산다는 것은 호흡을 하듯이 남을 들이고 나를 내주며 교환하는 것이다. 들이고 내줄 줄 모르는 것을 죽음이라 한다. 마음도 생각도 돈도 지위도 명예도 들어오면 내놔야 한다. 삶을 죽인다는 것은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나‘뿐인 마음과 어리석은 욕심을 죽여 참으로 살기 위함이다. 불필요한 욕구와 언행을 죽임으로서 인생에 의미를 주는 삶을 살리는 것이다. 마음이 ’나’뿐인 사람은 자기편애로 인생을 해석하면서 나와 남의 조화로운 삶을 깨뜨린다. 그러므로 ‘나’뿐인 나를 살리려 하면 나는 내안에 갇히게 되어 참 나가 죽고 남을 해치며 세상을 해친다.

‘나’만 아는 나뿐인 마음은 인생이란 나 밖의 사물과 나와의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나’뿐인 나는 생각이 나라는 몸에 갇혀 몸 밖의 세계를 보지 못한다. 이성이 아닌 기분과 감정으로 사물을 판단하기 때문에 생각이 천박하고 미숙하다. 내 몸과 마음이 소중한 만큼 남의 몸과 마음과 생각도 소중하다는 것을 모른다. 남의 결함은 잘 보면서도 자기의 결함을 보지 못한다. 인간이라는 말은 나와 남이 서로를 배려하며 조화롭게 산다는 뜻이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언행에서 인간의 모든 불행이 탄생한다.

마음이 자기 안에 갇혀있는 사람은 자기 생각에 묶여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생각이란 처지와 입장 환경과 조건 이해득실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관점이 다른 생각을 만나면서 다듬어지고 반론에 의해 성장하며 도리에 이른다. 그러므로 사물을 밝게 보는 사람은 자기 생각에 집착하지 않고 남의 생각을 수용하며 각양각색의 다양한 생각 중에서 함께할 수 있는 생각을 선별해내고 도리에 맞게 숙성시킨다. 열린 마음에서 지혜가 생기며 남과 나의 소통과 인화가 생기고 닫힌 마음에서 불통이 생긴다. 남의 의견을 거부하며 자기 의견에 갇히고 어리석음에 붙들리면서 사람과 세상과의 불화가 발생한다.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선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자신이 잠시 후에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자신의 마음을 더럽히고 고통스럽게 하는 어리석고 사악한 욕망의 집착에서 해방될 수 있다.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돈과 지위와 명예에 대한 허영심이 생기고 허영심이 마음을 지배하면서 필요가 확장되고 필요가 확장될수록 불필요한 욕심이 커지고 욕심이 커질수록 괴로운 일이 많아진다. 참 나로 산다는 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사는 것이다.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 인생을 설계한다. 세속을 의식하며 남과 비교하다보면 남을 모방하게 되고 남을 모방하다보면 나를 잃고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닌 조연자로 살게 된다.

나와 남을 비교하고 자기를 남위에 세우려는 마음이 시기, 질투, 분노, 미움, 사치, 허영심, 고집, 독선, 오만이 삶을 불안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존귀하다는 것은 남과의 비교 우위의 지위와 명예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고결하게 하는 것이다. 욕심을 줄이면 마음이 존귀해지고 평안해지며 괴로움이 없어져 살맛이 나게 된다. 마음이 자기에 갇힐수록 자기 것에 집착한다. 마음이 자기에 갇힐수록 재산에 묶이고 재산의 득실에 의해 마음은 평정을 유지하기 어려워 나를 잃게 된다. 마음이 자기에 갇힐수록 명예욕이 강하고 명성에 영합하면서 주체성이 없는 사람이 되어 진실한 삶에서 멀어진다.

욕구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나‘만 아는 사람은 욕심이 많고 욕심이 많은 사람은 지위라는 이익을 정의보다 크게 생각한다. 세상에 악이 끊이지 않고 득세하며 불의한 사람이 권력의 정상에서 부당하게 권력을 행사하며 악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지위를 욕심내어 부당하고 불의한 일에 협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위에서 발생하는 이익에 대한 욕심이 도덕적 양심을 죽이면서 자기를 잃게 되고 자기를 잃게 되면서 사람들은 악의 도구가 되어 불의에 협력하게 된다. 참 지위는 세속적 지위가 높은 것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이다. 세속지위는 악행으로 세상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는 불의한 사람들도 가질 수 있다. 지위를 가진 악한 사람들은 상석에서 귀인 대우를 받고 선량하고 약한 사람을 천대하는 세속 지위를 참 지위라고 할 수는 없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