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55)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글ㆍ그림 : 아원(兒園)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풍산 안곡 출신

2020-04-23     조경훈 시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는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조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중략)-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 푸른 웃음 푸른 설음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이 시는 시 제목이 말하듯 1926년 일제강점기에 쓴 시다. 그때 우리 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겼다는 충격은 자탄과 더불어 어디에 호소 할 수도 없는 절망상태에서 빠져 있었던 때다. 이럴 때 시인은 이 시로 울부짖듯 외쳤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전체적으로 보면 우울하고 절망적인 정조 속에서 탄식과 푸념과 정열을 잘 조화시켜 어쩌면 웅장하게 호소하듯 조국에의 사랑을 자연에 붙여 토로하였다. 그때 남의 땅이 되어버린 우리 땅, 나는 우울하고 슬픈데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답답하기만 하다. 이럴 때 무엇을 찾아 헤매며 또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그러면서 들에 온 봄을 빼앗겼듯이 이 봄마저 빼앗길 것 같아 불안하다. 
이상화 시인은 1920년대 백조파 시인으로 누구보다 더 대시대적(對時代的) 고민을 시로 표출시키는데 성공한 시인으로, 민족적 의식과 시대적 울분을 저항 할 수 있는 한계까지 이끌어가면서 우리 민족의 저항의식을 고취시켰다. 그리고 빼앗긴 땅을 떠나 남의 땅 중국 대륙을 방랑하다가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43년에 죽었다. 그 울부짖음은 그렇게 갔지만 지금은 대구 달성공원에 <나의 침실로>의 시비가 세워져 우리를 반기고 있다. 

■ 이상화 1901~1943 경북 대구출생
-백조 동인으로 활동, 초기에는 낭만적인 경향의 시를 썼으나 후기에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시를 썼음. 시집으로는《상화와 고월》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