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ㆍ코로나ㆍ사람사는 세상

2020-05-27     림양호 편집인

코로나19 염려로 예년처럼 노란 물결이 가득하지는 않았지만,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11주기 추도식에서 ‘기타 치는 아저씨’ 노무현 대통령이 시민 207명과 함께 부른 ‘상록수’가 영상으로 울려 퍼졌다.
앞서 지난 4월 19일, 4ㆍ19혁명 60주년을 맞아 발표한 2020년판 《상록수》는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전 세계 의료진에게 헌정하는 곡으로 다시 태어났다. 군내 24팀, 36명 인기가수가 한마음으로 불러 8개 국어로 번역돼 배포됐다.
“저들의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에 솔잎되리라.//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노래 상록수가 대한민국에서 가지는 의미는 ‘광활’하다. 1977년 김민기 작곡, 양희은이 불러 널리 알려진 상록수(원제목은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는 발표 후 수년간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노동자들의 합동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박정희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우는 시위 현장에서 불리자, 정권에 의해 금지되었다. 방송 등에서 들을 수 없었고, 부를 수도 없었다. 이후 민주화 바람을 타고 해금돼 ‘상록수’라는 제목으로 세상 사람들과 다시 만났다. 외환위기 때는 박세리 선수가 미국 여자프로골프투어 대회에서 ‘맨발투혼’으로 우승하는 모습을 담은 공익광고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며 희망과 위로를 주었다. 노무현 대통령 대선 광고의 배경음악이었다. 각종 국가 기념일 행사 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온 국민의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이 노래에 눈시울 붉히며, 용기를 얻어 힘든 시기를 이겨낸 국민 앞에, 코로나19 감염병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2020년, 희망을 전달하는 응원의 노래로 다시 등장했다. 요즘 흐름을 덧붙이고, 의료 최전선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했다.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약 없는 기다림이 반복되는 요즘이지만 '상록수'처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는” 그날은 분명 올 것이다.
다시 봉하마을 11주기 추도식.
노무현 대통령이 2001년 대권 출마 선언하며 밝힌 구호,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를 주제로 오늘날의 의미를 짚어보고 앞으로의 과제로 삼는다는 취지로 기획했단다. 낮은 사람으로 겸손한 권력이 되어 강한 나라를 이루고자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궤적은 차고 넘친다. “깨어있는 시민, 참여하는 시민이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라며 ‘시민주권시대’ 관련 발언을 정리한 글을 찾아 읽었다.
“자유와 평등은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다. 평등한 사회만이 자유가 있다. 누구로부터 자유인가? 사람의 지배로부터 자유를 의미한다. 자유와 평등을 얘기할 때는 평등이 근본이다. 연대와 사회정의를 이상으로 하는 진보주의는 민주주의 안에 내재해 있는 가치이다. 민주주의 사상이 성립한 이래로 사람들은 꾸준히 지배 질서를 해체해왔다. 그러나 아직 자유를 제약하는 많은 환경이 존재하고 있다.”
“민이 제대로 서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의 단결된 힘이 민주주의의 보루이자 우리의 미래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적절한 민주주의 형태는 진보적 시민민주주의이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인간다운 삶이라는 가치의 실현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독선과 부패의 역사, 분열의 역사, 패배의 역사, 굴욕의 역사로 비롯돼 왔던 패배주의와 기회주의 문화를 민주주의 시민사회, 민주주의 시민문화로 변화시켜나가야 한다. 한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시민적 주체 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시민, 지도자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시민, 스스로 지도자가 되려는 시민이 많아져야 한다.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가 완결된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아직도 민주주의가 더 발전해야 할 많은 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길에는 모든 시민이 동행할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 지향이 뚜렷하고 각성이 있는 사람은 그 길로 동행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이 누려야 할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우리는 할 일을 해야 한다. 더욱더 많은 사람이 더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민주권시대를 열어나가자.”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을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완성하겠다는 다짐이 엄중하다. “손에 손 맞잡고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