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어우리말(101)/ ‘피난’이 맞을까 ‘피란’이 맞을까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2020-07-15     이혜선 편집위원

피난 → 홍수 등 자연재해
피란 → 전쟁 등 인적재난 

 “부산시가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세계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피란민’ 역사가 담긴 서구의 한 유서 깊은 교회가 철거 위기에 놓였다”
“유엔군이 철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자유를 찾아 나선 ‘피난민’들이 순식간에 흥남부두로 몰려들었다. 1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몰린 흥남부두는 통제 불능 상태였다”
6ㆍ25전쟁 관련 신문기사에서 발췌한 예문들이다. 피란과 피난을 혼용하고 있어 혼란스럽다. ‘피난’이 바른 표현일까? ‘피란’이 올바른 표현일까?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결론적으로 둘 다 맞는 표현이다.
피란(避亂)은 ‘전쟁(戰爭)이나 병란(兵亂)과 같은 난리를 피해 옮겨 감’을 말한다. “시리아 정부군의 공격으로 북서부 반군 지역에서 수십만 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처럼 표현할 수 있다.
피난(避難)은 ‘뜻밖에 일어난 재앙이나 고난과 같은 재난을 피해 옮겨 감’을 의미한다. “지진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서둘러 피난을 떠났다”와 같이 쓸 수 있다.
한국전쟁이나 시리아ㆍ리비아 내전은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이주한다는 점에서 ‘피란민’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전쟁은 급작스럽게 일어난 재앙, 다시 말해 재난의 일종이기도 하므로 ‘피난민’이라고 해도 된다. 이렇듯 ‘피난’과 ‘피란’은 서로 밀접한 상관 관계에 있어 실제 언어생활에서 의미상 비슷한 말로 쓰인다. 피난처와 피란처, 피난살이와 피란살이 모두 사전에 등재돼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다만 자연재해의 경우 ‘피난’만 쓸 수 있다. 즉 풍랑 등의 재난을 피해 배가 임시로 들어가는 항구를 뜻하는 ‘피난항’, 산이나 외진 곳에서 비바람을 피해 피신하는 곳을 말하는 ‘피난소’ 등은 자연현상으로 인해 일어나는 재난을 피하는 상황이므로 적합한 표현이지만, 풍랑이나 비바람이 전쟁과 같은 난리의 상황은 아니므로 이를 ‘피란항’, ‘피란소’라고 나타낼 수 없다. 
피난과 피란이 헷갈린다면 ‘피난’은 지진이나 홍수 등의 ‘자연 재난’을 피하는 것, ‘피란’은 전쟁이나 병란 등 ‘인적 재난이나 난리’를 피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