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추령천 연어를 꿈꾸며

신형식 원장(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2021-02-03     신형식 원장

1년 전, 전주에 오래 살던 안도현 시인이 내성천 옆 고향땅으로 돌아갔다. 붙잡았던 손을 놓아줘야 했던 환송연 자리는 지금도 내 마음속 아릿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안 시인과 함께 했던 지난 세월을 떠올린다는 건, 내 삶을 되돌아보는 것과 마찬가지.

대구 대건고 시절부터 전국의 백일장을 휩쓸던 경상도 학생 문사였던 그는 1980년 원광대에 입학하면서 전라도 사람이 되었고 이후로 여기서 시인과 남편과 가장으로 살았다. 40년간 그는 동학과 1980년 광주, 그리고 전라도의 산하와 사람들을 만나고 노래했다. 신예 시인이자 국어교사였던 그가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 당해 5년여 힘든 시기를 보내던 무렵, 나는 시인과 교유하기 시작했다. 그를 볼 때마다 그의 맑은 시심에 놀라고 단단한 결의에 한 번 더 놀라곤 했었다.

그는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어디 있느냐고, 공개 질의했다는 죄 아닌 죄로 몇 년간 재판정에 서는 고초를 겪었고 대표적 ‘블랙리스트’의 문인으로 원치 않는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불의한 정권 하에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절필 선언을 했을 때의 결연함이라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많은 이들이 안 시인에게 큰 보상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는 촛불시민의 열망이 정권 교체라는 결과를 빚은 것으로 족하다며 꺾었던 붓을 다시 들었다. 지난해 말, 8년 만에 나온 그의 신작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를 받았을 때의 감격은 그래서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주옥같은 시 외에도 안 시인은 1996년 3월 출간한 『연어』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사반세기가 넘도록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이 책은 현재 139쇄, 판매부수는 100만을 훌쩍 넘었다.

나는 이 작품이 소설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섬세하면서도 간결한 표현은 서사시와 같은 감동을 준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은빛연어’가 동료들과 함께 성장하며 모천으로 회귀하는 도중 참수리에게 누나연어를 잃고, 불곰의 공격을 막아준 ‘눈 맑은 연어’와 사랑에 빠지고, 마침내 초록강 폭포를 거슬러 올라 산란과 수정을 마치고 생을 마감하기까지… 시인의 손끝에 의해 묘사된 연어의 짧고 아름다운 삶의 여정은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실제로 이 땅에서 태어난 연어들이 태평양을 가로질러 알래스카 베링해까지 흘러가서 4~5년 살고 되돌아오기까지 평균 이동거리는 무려 4.5만 킬로미터. 둘레가 4만 킬로미터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오는 셈이다.

난 이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는데 그때마다 내 삶의 지난 행로를 되돌아보곤 한다. 중학교를 졸업하며 고향을 떠나 전주와 서울 그리고 태평양 건너 뉴욕에서 학업을 마친 뒤 1985년 귀국했고, 그때부터 역방향으로 서울-대전-전주로 삶의 근거지를 바꿨다. 그러다 작년 구순의 어머니가 홀로 계시는 고향땅으로 주민등록지를 옮겼다. 35년 만에 드디어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명저 『이기적 유전자』에서 모든 생명체의 존재 이유는 자기 유전자보존이라고 역설한다. 도킨스의 주장처럼 종족번식을 통해 그 과업을 완수한다 해도 왜 그 터전이 하필 모천이어야 하는 것일까? 돌아오는 길목에 좋은 하천이 많을 텐데... 안 시인은 왜 아끼는 사람들의 거듭된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내성천 기슭으로 돌아갔을까.

기실 이런 질문은 내게 던지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 강으로 회귀한 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 나에게 ‘은빛연어’가 다가와 들려준다. 폭포에 오르기 전 그가 동료들에게 한 말이다.

“우리가 쉬운 길을 택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새끼들도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할 것이고, 곧 거기에 익숙해지고 말 거야. 그러나 폭포를 뛰어넘는다면 뛰어넘는 순간의 고통과 환희가 훗날 알을 깨고 나올 새끼들의 옹골진 삶이 되는 건 아닐까? 쉬운 길 대신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뿐이야.”

옛 선비들은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서 세상에 이름 떨치는 것을 효행의 으뜸으로 치면서도, 바깥 일이 끝나면 귀향하여 고향의 크고 밝은 미래를 위해 자신의 경륜을 보태는 걸 더 큰 보람으로 여겼다. 떠난 이가 돌아오고, 그의 바깥 경험이 안에 차곡차곡 쌓이면서 내 고향이 후일 내 후손의 자랑스러운 고향이 되길 바라면서.

이번 주말엔 내 고향 쌍치 추령천을 따라 걸으며 겨울강바람을 쐬어야겠다. 걷다가 문득 내성천의 안부를 물어야겠다. 자네는 거기서 얼마나 더 맑고 깊어지셨는가? 나도 이제 내 고향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