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국장] “학생들이 시방 뭐 하는 것이여?”

2021-02-24     최육상 기자

지난 23일 오후 읍내터미널 대합실. 평일치고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많은 청소년들이 대합실 안과 밖을 바쁘게 오갔다. 순창청소년영화캠프 우리, 영화 만들자!’(이하 우영자’)에 참가한 학생들이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다.

우영자는 지난 2018년 시작한 영화캠프로 이번이 3기째다. 우영자는 군내 청소년들이 영화계 유명 인사인 여균동 감독 등에게 영화 이론을 배우고 연기와 촬영 등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한다. 청소년들은 2주 동안 영화를 제작하는 놀라운 일을 해 낸다.

수업 9일째 첫 현장 촬영. 대합실 의자에는 많은 주민들이 앉아 계셨다. 대부분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어르신들이었다. “, 다시.” “이 대목에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총감독과 촬영감독의 손짓, 말 짓에 따라 대합실 안은 웅성거리다가도 이내 잠잠해지기를 반복했다.

한 주민이 궁금증을 못 견디시고, 내게 다가와 귓속말로 물으셨다. “학생들이 시방 뭐 하는 것이여?” “, 순창 학생들이 영화촬영하고 있습니다.” “영화? 그라믄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감?” “, 그게…….” “하먼, 극장에 가야 볼 수 있깐?” “, 나중에 여기 읍내 작은영화관에서 시사회를 한답니다.” 나는 학생들의 영화를 어디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시원하게 답을 드릴 수 없었다.

순창중농고(현 제일고)를 졸업한 임실 출신 김용택 시인은 어릴 적 순창극장에 얽힌 사연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순창극장에 들어오는 모든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지 않으면 사람이 늙어간다. 영화를 본 뒤 할 이야기들을 글로 써서 책 촌놈 김용택 극장에 가다가 되었다. 할 이야기를 계속 쓰면 글이 된다. 어느 순간 내가 책을 보고, 생각하고, 읽고, 시를 쓰고 있더라. 시를 10년쯤 쓰다 보니, 내 시가 시 같았다.”

순창극장이 김용택 시인을 탄생시켰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우영자 관계자는 학생들의 영화 제작 과정을 매일 기록하고 있다. “꿈꾸던 생각을 영화로 만들어보려는 기대가 전해집니다.”

우영자는 군이 예산을 들여 지원하고 있다. 황숙주 군수는 우영자 사전교육에 참석해 수준 높은 강사진에게 교육을 받고 영상관련 분야에서 꿈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순창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이 꽃피우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군수가 애정과 관심을 갖고 유명 감독과 힘을 모아 청소년들의 꿈을 북돋고 있다. 다행스런 일이다. 청소년들은 꿈을 먹고 자란다. 문화예술인들은 꿈을 키우며 산다. 그래서 한 가지 바람을 전한다. 군에 터를 잡고 문화예술을 풍성하게 만들려는 예술인들에게 꿈을 키우며 살 수 있는 예산과 자원을 정말 다양하게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비록 유명하진 않더라도 말이다. 김용택 시인은 순창극장에서 예술혼을 접하면서 서서히 탄생했다. ‘트롯신 강문경도 처음부터 유명 트로트가수는 아니었잖은가. 둘러보면 우리 주위에는 척박한 문화예술을 묵묵히 개척하는 무명인들이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