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국장] ‘암벽 한자’와 ‘벽화 한글’

2021-08-25     최육상 기자

용궐산 하늘길에 암벽을 훼손하며 새긴 한자 관련 기사가 포털사이트를 통해 알려지면서 군민들을 포함해 많은 국민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열린순창〉은 용궐산 한자 문제를 지난 호에서 기사로 다루며 군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특히, 〈월간 산〉이 지난 20일에 보도한 ‘순창 명물산행,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된 용궐산’ 기사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노출돼 25일 13시 현재 252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 기사는 ‘순창 명물산행’이라는 제목처럼 “순창 용궐산 하늘길의 멋진 풍경과 적재적소에 새겨 넣은 고사성어” 등을 좋은 내용으로 소개했다. 하지만 이를 접한 국민들의 댓글 내용은 비판 일색이었다. 

“글을 새기지 마세요. 자연 그대로 두세요.”(나수건) “유지보수는? 국민들 혈세다. 얼마 안 가 천덕꾸러기 된다.”(일출) “인간의 탐욕이 지구를 훼손하고 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바라만 봐도 좋다.”(Roverboy) “제발 산을 그대로 두고 구경하면 안 되겠니? 왜 그렇게  망가뜨리고 부수려고만 하니? 제발 산을 훼손하지 말고 자연 그대로 두고 후손에게도 물려주자! 제발.”(Le BLANC) 

지난 22일 일요일 오후, 복흥 덕흥마을을 처음 찾아갔다. 마을회관 앞에 다다르자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알록달록 색동옷을 입은 양 담장에 그려진 벽화였다. 멋진 그림과 함께 더욱 눈여겨보게 되는 건 따로 있었다. 가슴을 뛰게 하는 글귀였다.

“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너뿐이야.” “꿈꾸는 걸 포기하지 마.”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래, 넌 웃는 게 예뻐.” 

알고 보니 덕흥마을 입구에는 “환영합니다. 행복이 넘치는 봉덕리 덕흥 벽화마을입니다”라는 선전판이 세워져 있었다. 

지난 21일 토요일 오전, 지인 여럿과 비가 세차게 내리는 와중에 동계 장군목 일대 바위를 찾아다녔다. 선조들이 남긴 역사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바위 곳곳에는 여러 한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그 중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물살에 씻기고 바람에 깎여 알아보기 힘든 한자들이 많았다. ‘한자’를 사용하던 조상들은 어쩔 수 없이 한자로 역사를 남겼다. 오랜 시간이 흘러 조상들이 남긴 흔적은 나처럼 후손들에게 길라잡이가 된다. 

장군목 바위를 답사하며 나는 무심코 지인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용궐산 암벽에 지금 한자를 새기고 있는데, 차라리 멋진 문구를 한글로 새기는 게 낫지 않나요?” 섬진강물에 빠져 바위를 이리저리 살피자니 멀리 용궐산이 계속해서 눈에 밟혔다. 

다시 복흥마을 이야기다. 마을 입구에 빛이 바래 세워진 선전판을 확인하고 다시 벽화를 바라봤다. 더욱 새로웠다. “당신과 함께라면 따뜻합니다.” 문구 하나하나는 보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 그린 것(글을 쓴 게 아니라 다른 그림과 어울리게 그린 글씨다) 같았다. 

먼 훗날 후손들은 덕흥마을 담장의 한글과 용궐산 암벽의 한자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