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에어컨 온도 … 동물에게 물어봐

2021-11-16     열린순창

한겨레 2021-10-12 16:5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애니멀피플]

박쥐·철새 대규모 연구서

암컷 따뜻한 곳 선호확인

신경·호르몬 차이, 새끼 보호 이유

 

공원 산책길에 스웨터를 입은 여성이 아직 반소매 차림의 남성을 지나간다. 여성이 남성보다 추위를 많이 탄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지만 이런 현상이 사람뿐 아니라 다른 포유류와 조류 등에서도 나타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남녀의 열 감각 차이는 애초 진화의 결과여서 에어컨 설정온도나 난방 시기를 두고 신경전을 벌일 일이 아니란 해석이 나온다.

탈리 매고리 코헨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박사 등은 과학저널 지구 생태학 및 생물지리학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동물의 암컷과 수컷은 온도를 다르게 느낀다. 이는 생식 과정과 새끼 돌봄 때문에 두 성별의 열 감지 체계가 다르게 진화한 결과라고 밝혔다.

그동안 사람이 성별에 따라 선호 온도가 다르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여성은 남성보다 높은 온도를 좋아하며 작은 온도변화에 더 민감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여성이 쾌적하다고 느끼는 온도(26.3)가 남성(25.3)보다 1도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더운피 동물 가운데 이런 현상은 흔히 나타난다. 연구 책임자인 이런 레빈 텔아비브대 박사는 이스라엘에 서식하는 큰생쥐꼬리박쥐가 새끼를 낳고 전적으로 기르는 암컷은 번식기 때 따뜻한 갈릴리 해로 가지만 수컷은 서늘한 헤르몬 산 동굴에 몰린다는 사실을 이전 연구에서 밝힌 바 있다.

이런 현상은 새와 포유류에서 널리 발견된다. 철새가 겨울을 날 때 수컷은 암컷보다 더 추운 고위도로 간다. 새들은 암수가 함께 새끼를 양육하지만 월동지에선 암컷을 차지하거나 영역을 지키려고 다툴 필요도 없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곳으로 갈 뿐이다.

포유류 가운데 산양의 일종인 알프스아이벡스는 낮 동안 기온이 오르면 수컷은 암컷보다 훨씬 고도가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또 평생 짝을 짓거나 무리 생활을 하는 종들도 수컷이 그늘진 곳을 찾는 동안 암컷은 햇볕 쬐는 곳에 있거나 수컷이 산꼭대기로 오르면 암컷은 계곡에 머물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성별에 따라 선호하는 온도에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2018년까지 37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채집해 가락지를 단 새와 박쥐 11000여 마리가 지점별로 어떤 성비 분포를 보이는지 조사했다. 새와 박쥐는 선호하는 기후대로 쉽게 이동할 수 있어 성별 선호 온도 차이가 잘 드러난다.

분석 결과 수컷이 낮은 온도를 좋아하고 암컷은 따뜻한 온도를 선호한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좋아하는 온도 차이가 암컷과 수컷이 서로를 필요로하지 않을 때는 성별의 격리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레빈 박사는 이런 현상이 광범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암컷과 수컷 사이에는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열 감지 메커니즘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는 이런 차이는 두 성별이 고통을 느끼는 감각의 차이와 비슷하다두 성별의 감각을 담당하는 신경 메커니즘과 호르몬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애초에 이런 차이가 진화한 이유는 뭘까. 매고리 코헨 박사는 암컷과 수컷의 격리는 자원경쟁을 완화하고 공격적이어서 새끼를 해칠 수 있는 수컷을 떼어놓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많은 포유류 새끼는 스스로 체온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따뜻한 곳을 선호하게 됐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자들은 사람과 많은 동물에서 보듯이 암컷은 서로 몸을 붙이는 걸 좋아하고 수컷은 거리를 두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추위 타는 차이가 개인 취향이 아닌 진화적 뿌리에서 생겼다면 우리는 훨씬 관용적일 수 있다. 레빈 박사는 두 성별이 다툴 일이 아니라 서로 거리를 좀 두고 저마다 평온을 즐기는 게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인용 논문: Global Ecology and Biogeography, DOI: 10.1111/geb.13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