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쪽빛한쪽(3) 겨울 바다에서-선산곡 작가

2021-12-29     선산곡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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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겨울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작정하고 떠났지만 눈 내리는 겨울 바다까지 기대한다는 것은 사치다. 그 바다를 가는 길, 내내 알폰시나와 바다를 들었다. 알폰시나를 기리는 시를 펠릭스 루나가 썼고 아리올 라미레즈가 곡을 썼다. 메르세데스 소사를 위시하여 디에고 엘 시갈라,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까지 모두 열여섯 명이 부른 노래였다. 출발할 때 시작해서 바다가 보이는 곳에 도착할 무렵, 마지막 곡은 끝났다. 운행 시간과 딱 들어맞는 80분간, 저마다 다른 가수가 부른 같은 노래를 이어 듣는 동안 말할 수 없는(?) 감상(感傷)은 나만의 것이었다.

바닷가에 섰다. 초겨울의 한기가 내린 바다의 빛이 싸늘하다. 수평선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과 달리 무덤덤하다. 망각을 부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한때의 응시. 그때는 끝없이 깊고 깊은 상처를 이겨내기 위한 안간힘이라고 생각했다. 내 언제부터 바다와 인연이 있어 상처 지닌 마음인 양 수평선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했을까. 한낱 감상에 지나지 않았던 그때의 행위는 다분히 고의적이었다. 전생에 바다와 인연이 있었다고 믿었던 부끄러운 기억은 부질없는 사색이었다. 바다는 그냥 거기 있을 뿐,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을 비로소 안 기분이었다.

이제는 내게 주어졌던 온갖 인연마저도 지워야 한다는 것을 바다가 가르쳐주고 있었다. 다만 궁금했다. 바다를 유난히 좋아했다는 아르헨티나의 여류시인 알폰시나 스또리니. 잠자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바다로 걸어 들어간 그녀였다.

저 바다를, 그 바다를 알폰시나 스또리니는 무엇을 응시하며 걸어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