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75)늘, 혹은-조병화

글·그림 조경훈 시인·한국화가

2022-02-09     조경훈 시인

 

 

, 혹은

 

조병화

 

,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 카랑 세상을 떠나는

시간들 속에서

 

,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있는 인생을

가득 채워가며 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

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지금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 그러한 내가 있다는 건

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노을인가

조병화(趙炳華) 1921~2003. 경기 안성 출생.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 60여 권의 시집 출간.

 

<해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부니 조용한 대나무가 흔들린다. 대나무가 흔들리니 바라본 내가 흔들린다.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내 마음은 고요한 물결 /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마음·김광섭)이라고 했다.

시인뿐만 아니고 모든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소망을 담고 산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마음속에 법률, 의학, 경제, 기술 등을 이루어 담고 살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시와, 문학과 낭만, 사랑을 그 마음속에 담고 행복하게 산다. 그러기에 시인은 원래 따사롭게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 황망히 바쁘게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를 물었고, “보고 싶은 사람과,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 얼마나 즐거운 인생다운 일인가를 묻는 말씀도 하셨다. 어쩌면 이 시를 쓰신 것은 따사롭지 못하는 오늘날의 세태를 탄하시는 뜻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무리 세상이 험해졌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생각나고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은 있는 것이니 찾아내어 같이 외롭지 않게 살아보라는 권유도 있다.

그동안 살만큼 살았다면 친구, 선생님, 선후배들도 많다. 그 중에 생각나는 사람도 있고, 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 마침 봅이 오고 있으니 여기 당신인 듯 꽃이 피어 소식을 준다면 가는 길 외롭지 않은 동행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