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천지공/남의 공을 가로 채

2022-03-02     정문섭 박사

탐천지공(貪天之功, tān tīan zhī gōng)

하늘의 공을 탐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온다.

 

K국장이 싱글거리며 내려와 과장회의를 소집했다.

국장님, 축하드립니다. 장관님께서 국장님께 훈장을 상신하라 지시하셨다면서요?”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 우리도 국 직원들 표창 대상자를 뽑아 올립시다.”

의견들이 오갔다. 국장이 훈장을 받게 되니 과장급은 제외되었다. 업무 실적으로 보면 J사무관의 공로가 가장 컸지만 승진에 필수적인 가점(加點)을 받아야할 대상자는 Y사무관과 B주사였다. 고심 끝에 국장이 J사무관을 불렀다.

“J사무관, 자네가 승진하려면 아직 2년 정도 남았으니 Y사무관에게 양보하면 어떻겠나?”

이윽고 Y의 두툼한 공적조서가 인사과로 올라가고 며칠 후 각 국장들이 포함된 표창상신위원회가 열렸다. K국장이 힘이 빠져 내려왔다.

“C과장, 공적조서를 보기나 한 거요? J와 다른 사무관들이 한 일을 Y사무관 지가 혼자 다 한 걸로 해놨더군, 다른 국장들이 들고 일어나 Y가 과장이냐 하며 말들이 나오더군. 겨우 올려놓긴 했지만 서열이 뒤라서 총무처에서 숫자 조정하면, . 장담할 수가 없어.”

중국 춘추시대(BC770~403) 북방의 진() 헌공(獻公)이 애첩 여희(驪姬)사이에 태어난 해제를 왕위에 오르게 하려고 태자 신생(申生)을 자살하게 하였다. 또 걸림돌이 되는 다른 아들 중이(重耳)와 이오(夷吾)를 내쫓고 죽이려 하니 중이와 이오는 다른 나라로 망명하였다. 중이가 19년이나 되는 긴 유랑생활을 하다가 여러 신하와 이웃 나라의 도움을 받아 고국에 돌아와 62세에야 왕위에 올랐다. 이가 바로 춘추오패 중의 한 사람이 되는 문공(文公)이다.

그는 즉위한 후 많은 현신을 등용하면서 망명을 함께 한 자나 자금을 제공한 자에서부터 귀국을 환영한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공평하게 논공행상했다. 그리고 행여 누락된 사람이 있을까 염려하여 해당자는 신고하라고 포고까지 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망명생활을 하면서 굶주린 중이에게 허벅지살을 베어 내 삶아 바친 개자추(介子推)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웃 사람들과 어머니가 신고하기를 권했지만 개자추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뭔가를 바라고 충성을 바친 게 아니오. 헌공의 아홉 공자 중 중이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그가 가장 현명하고 능력이 되는 자였고 또 하늘이 도왔기 때문입니다. 이 당연한 결과를 두고 지금 사람들이 모두 자기 덕분이라고 생색을 내는데 이는 가당치 않은 일이오.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을 도적이라 하는데 하물며 하늘의 공을 탐하여 자신들의 공로로 삼으려 하니 다시 말할 것이 있겠는가(竊人之財 猶謂之盜 況貪天之功 以爲己力乎)?”

얼마 후 개자추는 어머니와 같이 산서성 면산(綿山) 깊은 곳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문공이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자책하며 개자추를 찾아 곳곳을 다 뒤졌다. 문공이 개자추를 억지로라도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까지 질렀으나 그는 끝까지 나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불에 타 죽고 말았다(抱木燒死).

문공이 개자추가 타 죽은 날을 기억하여 동지 후 105일 째 되는 날에 제사를 지내며 백성들에게 취사를 금지시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게 하였다, 한식(寒食)의 유래다.

 

하늘의 뜻마저 즉, 천연(天然)의 공()을 자신의 공으로 돌린다는 말이다. 훗날 사람들은 남의 공을 탐내어 자신의 공으로 돌리거나 도용하는 것을 비판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39,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선이 끝나고 한쪽은 환호하고 한쪽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뜰 것이다. 환호 속에는 개자추 같은 자도 있어 가슴을 쓸어내리고 할 일 다 했다며 잠을 청하겠지만, 이른 바 캠프에서 감투를 쓴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써부터 자기 공적서 작성하기에 바쁘고 이른 바 OO이니 비선이니 하는 자들이 얼굴을 내밀고 당선자 주위를 맴돌며 온갖 언론에 자기의 공을 드러내려 할 것이다.

옛 왕조시절, 수성에 성공하려면 토사구팽이 제일이었다. 저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이 그랬고 이조 태종 이방원이 그랬다. 이조시대 인조반정 때에는 부적절한 논공행상으로 이괄의 난까지 일어났고 이로 인해 병자호란을 겪게 되었던 불행한 역사가 있었다.

당선자, 골치 아플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개자추가 말한 대로 대통령을 맡을 능력이 있었고 국민, 하늘이 도와주었기에 당선된 것이라고 여기면 되는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 서 먼저 모두 토사구팽을 하되, 그중에서 또는 재야에서 능력이 되고 전문지식과 리더십이 있는 적격자를 찾아내어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 장관에 앉히면 되는 것이다.

당선 후 취임되기 전 어떤 자들이 어떤 자리에 가는 지 국민들은 눈을 부릅뜨고 볼 것이다. 당선자가 과연 탐천지공하는 자를 가려낼 안목이 있는지 그 결과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