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사람처럼(3)디오게네스처럼

2022-04-20     채광석 시인

 

무늬14 디오게네스처럼

 

채광석 시인

 

분노를 조직하라는 시대감정에

충실하지 못했다

 

슬품을 연대하라는 대중감정에

종종 침묵하고야 말았다

 

이십대의 가난한 미혼 예술가가

쌀이 떨어져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한 마디에

집단 수장된 세월호 아이들의 이야기

 

어느 자동차 회사 해고 노동자들이

줄줄이 자살했다는 이야기

 

눈 뜨고 감을 때마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죽음의 이야기

 

그러나 정신과 몸은

쉽게 반응하지 못한다

 

그런 나를 무감하다고

야단치지 마시라 너의 유감에만 충실하시라

 

동원되지 않은 내 감정 그 자체와

난 지금 외로운 사투를 하고 있나니

 

부디 내 눈앞에서 비켜주시게

햇볕 가리네

 

 

1968년 순창에서 태어난 채광석 시인은 대학 재학 중인 23세 때 등단했다. ‘대학 재학 중 등단이라는 수사는 화려함 그 자체다. 하지만 등단은 대학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등과는 화려함의 결이 전혀 다르다. 채광석 시인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대에 절필을 한 후, 나이 쉰이 넘은 지난 20192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를 펴냈다. <오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