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81)해바라기의 비명

2022-08-03     조경훈 시인

해바라기의 비명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1936>

함형수(咸亨洙) 1916~1946. 

함북 경성 출신

서정주·김동리와 <시인부락> 동인.

반고흐

 

세상의 꽃들은 모두 그렇지가 않은데 해바라기가 하는 일은 심상치가 않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뜨는지를 어찌 알았는지 그 쪽을 바라보고 있다가 해가 뜨면 그 해가 가는 쪽을 바라보면서 따라갑니다.

한낮에 우리는 뜨겁고 눈이 부셔 해를 바라보지도 못하는데 해바라기는 그 해를 바라보면서 그 해가 서산에 질 때까지 따라가서 보고 작별을 합니다. 그런 일을 한여름 내내 하고 있는데 그가 하는 일이 지능을 가진 사람 같아 범상치 않은 꽃입니다.

그들은 어떤 사연으로 얼마나 사랑했기에, 또 얼마나 따라가고 싶은 이별을 했기에, 세상에 나와 꽃으로 피어 그렇게 바라보다 가고 내년에도 그 씨가 환생해 또 그 일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의 사유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 해바라기 꽃을 마당가나, 골목이나, 학교 꽃밭에 심어서 한여름이면 그 꽃을 만나봅니다. 그때마다 해바라기처럼 하나만 보고 살아라는 생각과, 해바라기처럼 뜨겁게 내 꿈을 키우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마는 그 해바라기를 그림과 시로 남긴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인 네덜란드의 빈센트 반고흐는 선명한 색채와 강열한 이미지로 해바라기를 해보다 더 뜨겁게 그린 화가입니다. 결국에는 정신착란으로 권총 자살을 합니다마는 그의 예술적 내면의 정신은 해바라기를 닮았다 할 것입니다.

또 여기 <해바라기 비명>을 쓴 함형수 시인은 32년 간 짧은 삶 속에서 생전에 시집 한 권 내지 못하고 시 17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는데 생활이 어려워 노동판에서 일하면서도 늘 하모니카와 시첩(노트)를 끼고 다니면서 해를 마주해 해바라기처럼 뜨겁게 살다가 광기에 의해 죽고 말았습니다.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중략)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는 싯귀가 그의 삶과 같습니다. 해바라기처럼 짧은 생을 뜨겁게 살다 간 것입니다.

글ㆍ그림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