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연의 그림책(27) 낡은 축구화의 마법

2022-12-06     김영연 길거리책방 주인장

바야흐로 월드컵, 축구의 계절입니다. 엄동설한에 월드컵이라니요. 한국대표단 경기로 잠을 설치기 일쑤입니다.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이 새삼 실감납니다.(이 글은 한국이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한 시점에 쓰였습니다.)

축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종목이긴 합니다. 올해 구순이신 저희 시어머니도 ! ~”하면서 재미있게 보시고, 아이들도 틈만 나면 학교운동장에서 볼을 차며 놉니다. 축구선수가 꿈이라고 하는 아이들도 종종 만나곤 합니다. 하지만 제 남편처럼 조기축구에 아무 준비 없이 덤볐다가 몇 분 만에 부상을 입기도 하지요.

요즘 뭉쳐야 찬다골 때리는 그녀들같은 스포츠 예능이 인기입니다. 초보 선수들이 회를 거듭하며 날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윌리

 

여기 축구 선수 윌리(앤서니 브라운)가 있습니다. 표지를 보니 뒤표지까지 연결된 초록색 축구장을 배경으로, 몸집이 작은 윌리가 자신만만하게 빨간 프레임 바깥으로 공을 찹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칭칭 동여맨 축구화 끈이 좀 길어 보이네요. 신발이 큰 건지, 제 신발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윌리는 축구를 좋아하지만 축구화가 없었어요. 축구화를 살 돈이 없었거든요. 길거리 광고판의 축구선수와 축구공, 축구화를 부러운 듯이 바라봅니다. 축구 스타가 되고 싶은 윌리의 상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 윌리는 매주 축구장에 나갔지만, 친구들은 축구화도 없고 왜소한 몸집의 윌리에게 공을 주지 않았어요. 당연히 시합에도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오래된 파이공장을 지나 집으로 가는 길에 누군가를 만납니다. 그는 아빠가 입었던 유행이 지난 축구복을 입고 훌륭한 솜씨로 공을 차고 있었어요. 윌리는 자연스럽게 함께 공을 주고받기 시작했어요.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밤하늘에는 축구공 모양의 둥근 달이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공장의 깨진 유리창에 반짝이는 별도 보입니다. 여기저기 별의 모습이 보입니다. 표지의 축구공에도 별무늬가 그려져 있었구요. =스타가 되고 싶은 윌리의 마음일까요?

 

낡은 축구화의 마법

함께 공을 차던 낯선 인물이 윌리에게 자신의 축구화를 건네줍니다. 축구화를 바라보던 윌리가 고개를 들어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낯선 인물은 누구였을까요?

윌리는 보도블록의 금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집으로 돌아가서 축구화를 새것처럼 보이도록 닦고 또 닦습니다. 그 뒤로 윌리 부모님의 결혼사진이 보이네요.

윌리는 자신이 정해놓은 일상의 규칙에 따라 계단을 올라가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침대로 뛰어듭니다. 윌리의 소심한 성격이 그대로 보이는 장면입니다.

다음날 윌리는 허름한 축구화지만 자랑스럽게 운동장에 나갑니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하찮은 존재인 윌리의 축구화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운동장에서 윌리가 굉장한 실력을 발휘합니다. 축구화의 마법이었을까요? 드디어 윌리가 선수명단에 이름을 올립니다. 너무나 기뻐서 윌리는 금을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집까지 달려갑니다.

축구화에 마법이 있다고 믿는 윌리지만 연습에 연습을 더합니다. 실력이 날로 성장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파이공장을 지나갑니다. 지난번에 만났던 그 낯선 인물을 만나고 싶었지만 이제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축구공 같았던 달은 이제 기울어 바나나 모양의 달입니다.

 

축구화가 없어도 괜찮아

드디어 내일이 시합 날입니다. 너무 긴장하고 흥분되어 악몽을 꿉니다. 침대 위 액자 속 탑은 기울어져 있습니다. 윌리는 잠을 설치다가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시합에 늦지 않으려면 뛰어야 합니다. 자신의 규칙, 금을 밟지 않기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은 이때 박수를 칩니다. 그동안 윌리의 모습이 답답했던 게지요.) 그런데 겨우 운동장에 도착해 보니 저런, 축구화 가방을 안 가져 왔네요. 이제 어떡하죠? 그게 그냥 축구화가 아닌데걱정입니다.

이때 누군가가 유니폼을 던져주고, 축구화를 빌려줍니다. 빈약한 윌리가 운동장에 등장하자 관중들은 웃음을 터뜨립니다. 비웃음의 대상입니다.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양 팀의 경기는 팽팽했고, 스코어는 1:1, 드디어 윌리에게 공이 넘어왔어요. 상대방 선수를 하나하나 따돌리고, 엄청나게 덩치가 큰 골키퍼와 1:1 상황이 되었습니다. 과연 윌리는 골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요?(여러분의 상상에 맡겨 봅니다.)

시합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윌리는 낯선 인물과 낡은 축구화에 대해 생각하고 슬며시 미소를 짓습니다. 밤이지만 환하게 달이 비추고 있습니다. 이때 달은 윌리에게 축구화를 주었던 낯선 인물, 바로 윌리 아빠의 모습입니다. 서로 마음이 통했나 봅니다.

또한 길에는 바나나가 껍질이 벗겨진 채 놓여있습니다. 껍질을 벗어던지고 나온 윌리의 성장한 모습입니다. 초록색 벽에 비친 윌리의 그림자는 고깔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고깔모자는 언제 쓰죠? 아마 오늘은 윌리 생애 최고의 날인가 봅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마법입니다. 힘없고 소외된 약자가 꿈을 향해 도전하도록 위로와 응원이 담겨 있습니다. 그림 하나하나 숨어 있는 그림을 찾는 재미가 있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며 모양이 달라지는 바나나, , 달의 모습을 찾아보세요.

귀여운 윌리가 등장하는 앤서니 브라운의 다른 윌리 시리즈도 함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미술관에 간 윌리 다빈치의 모나리자등 세계적인 명화를 침팬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재미있는 그림책. 자꾸만 그림에 낙서하고 싶어진다.

꿈꾸는 윌리 분홍소파에 누워 영화배우, 가수, 탐험가, 화가, 작가가 되는 꿈을 꾸는 침팬지 윌리의 꿈이야기. 그림 속에서 바나나를 찾아 보는 재미가 있다.

윌리와 휴 거대한 고릴라 휴와 작은 침팬지 윌리가 친구가 되어가는 이야기. 친구란 어떠해야하는지 알려주는 그림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