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쪽빛한쪽(15) 눈이 내린다

선산곡 작가

2022-12-21     선산곡 작가

 

간밤에 눈이 내렸다. 내겐 첫눈이었다.

건성이었던지 첫눈은 며칠 전에 내렸다고 한다. 굳이 따지자면 눈발 한 둘, 눈으로 치지 않는다는 욕심 때문에 무망(無妄)이었을 것이다. 눈이 내리면 친구가 살고 있는 산촌(山村), 눈 쌓이는 논두렁길을 걸어 찾아가고 싶다던 탄식은 이미 몇십 년 전의 일이었다. 그 앞에 두었던 말이 목도리가 없어도 좋으니였다. 그 탄식은 결국 마음 속 상상으로만 그려 온 꿈이 되었다. 눈이 내렸지만 이젠 그런 그리움도 지우고 추억도 지우고 아쉬움도 지우는 시간만 남았다.

눈이 내리면 아내와 가기로 했던 이층찻집. 우리 동네 천변에 있는 찻집에서 눈 내리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실 작정이었다. 아침나절 눈은커녕 짱짱하게 퍼진 햇빛 때문에 우리는 기상예보를 투덜댔다. 결국 집에서 커피를 마신 얼마 뒤, 창밖에 보란 듯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집에서 마시는 커피도 괜찮았다. 드립퍼 여과지에 커피를 내리는 작업은 순전히 내 몫이다. 아내는 단 한 번도 그 일을 한 적이 없다. 끝까지 그 기록을 세우려는 목적은 없겠지만 몇 분 몇 초 만에 거피를 내려야 하고 온도가 어쩌니저쩌니하는 내 원칙을 배울(?)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전과 달리 커피를 진하게, 아니 독하게 마시기를 즐기는 나를 따라 하지 못하는 것만 그나마 다행일 뿐이다.

눈이 내린다. 같은 제목으로 그림 한 장 그렸다. 그리움을 위하여, 추억을 위하여, 아쉬움을 위하여! 논두렁길을 걸어 찾아갈 친구는 이제 없을지라도 마음 속 산촌 그 초가지붕 위에 눈이 내린다. 저 안에 내 청춘의 한때는 존재했을까. 부질없는 생각을 덮듯 바라본 창밖에 펑펑, 눈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