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쪽빛한쪽(16)잔해

선산곡 작가

2023-01-18     선산곡 작가

 

모처럼의 외출인데 비가 내린다. 소한(小寒)철 는개가 계절을 희롱하고 있다. 절대 봄은 아니라는 불신의 풍경이 눈앞에서 웃고 있다. 그렇다. 지금은 아직 봄이 아니다.

지난 가을의 단풍잎 몇 장, 길 위에 젖어 있다. 변하지 않은 모양으로 시간을 디딘 잔해가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 풀칠한 듯 붙어있다. 빛을 잃어버린 뒤였으니 차라리 마른 잎으로 버석거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낙엽은 바람 따라 어딘가로 휩쓸려 사라진다는 의식을 수정해야겠다. 그 길이 미끄럽다. 길이 미끄러운 게 아니라 내 걸음이 비틀거리는지도 모른다.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4번을 들으며 일을 했다. 일이라고 해봤자 B5용지로 양장본 한 권 만드는 작업이었다. 작년 4월에 그 라두 루프가 세상을 떠났다.

푸른 잎들이 돋아나던 때, 들었던 부음이었다. 드라큘라의 고향 루마니아 사람. 1945년생이니 너무 빠른 세상과의 이별이었다. 오래 전 레코드재킷에 찍힌 라두 루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고 껌뻑 죽었던 것은 그 눈빛 때문이었다.

조성진과 찍은 사진에는 백발이 성성한 오늘날의 모습이 있었다. 은둔자, 수도사라는 수식어에 맞는 서정적 연주를 들을 때마다 나는 그의 젊은 눈빛을 떠올렸다.

아마도 그의 연주를 이미지로 앞세우려는 마음속 수작(?) 때문이었을 것이다. 온종일 이 위대한 아티스트의 연주로 시간을 보냈다. 마치 나와의 이별이 직접적인 것처럼 마음 속 과장도 했지만 우울하진 않았다.

그러나 조롱처럼 머물러 나를 괴롭히고 있는 통증이 문제다. 겨울이면 시려오는 왼쪽 신체의 한 부분이 이미 백약이 무효가 된 지 오래다.

못된 의식의 찌꺼기가 낙엽의 잔해처럼 들어 붙어있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통증(痛症)의 잔해(殘骸)인가, 잔해의 통증인가 그래서 분간할 수 없지만 답은 하나다. 겨울이 지나면. 오로지 그것뿐이다.

 

(는개-안개비보다는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조금 가는 비-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