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에 시한줄(89)수선화에게

글ㆍ그림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2023-04-05     조경훈 시인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호승 1950년 경남 하동 출생.

저서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등 다수가 있다.

 

수선화에 답하노라

겨우내 죽은듯 살다가 봄이 오면 살짝 얼굴을 내밀고 피었다가 사라지는 수선화가 이 시를 받으니 고달픈 내 삶에도 위안을 받고 안도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어쩐지 이 시를 읽고 자장가로 그냥 잠들기에는 좀 허전하고 아쉬움이 있어, 이 시에 대한 답장을 수선화가 씁니다.

 

세상이 나를 울게 하거든 통곡하면서 울어라

그래야 하늘이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오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마라

공연히라도 기다려라

세상살이 쉬운 일이 어디 있더냐

바위틈에 구부러진 소나무가 더 아름답다

파도 소리가 키운

바닷가 해당화가 더 향기롭다!

바람이 불면 멋지게 그 바람을 잡고 흔들리고

눈비 오거든 그 눈비 맞으며 조용히 기도하라

가끔은 하느님도 눈물을 흘리며 소리치셨다

죽은지 나흘이나 지난 다케오를 살리실 때도

다케오야 일어나 나오너라

눈물을 흘리며 소리치셨다

우리의 삶은 외로울 때 아름답고

길이 보였다

산그림자도 내려왔지만 같이 살아주지는 않았다

어떤 것이든 영원히 나와 같이 사는 것은 없다

기다려도 오지 않고

꼭 살아야 할 사람이 세상을 뜨거든 울자

그리고 그 일이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수선화처럼 살자

 

정호승 시인은 기독교(가톨릭) 신자로 다른 시인들과는 다르게 외롭고 슬픈 일에 대한 시를 주로 쓰셨다. 어쩌면 우리 인간의 본질인 슬픔을 하늘과 대화하면서 사는 사제라 할 것이다. 정호승 시를 한번 다시 만나 보자.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가거라 / 그대 눈물 이제 큰 강물되리니 / 산을 입에 물고 나는 / 눈물의 작은 새여 / 뒤 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 <부치지 않은 편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