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시비/ 하늘의 뜻은 과연 어디에?

天 하늘 천 道 길 도 是 옳을 시 非 아닐 비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36

2012-06-26     정문섭 박사

포은 정몽주는 암살을 당하고 가해자 이방원은 왕이 되어 천수를 누렸다. 6진(六鎭)의 개척공신 김종서를 죽인 수양은 살아서 정권을 잡았고, 을사늑약을 반대한 민영환은 자결하였으나 찬성한 을사오적(五賊)은 오래 살았다.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은 대부분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착한 사람이 빨리 죽고 나쁜 사람은 오래 사는 것’에 대해 의문이 일었다. 물론 죽은 착한 사람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나오지만 이미 억울하게 죽어버린 영혼들은 어쩌란 말인가?

성경에 등장하는 순교자들! 하늘은 왜 그들을 일찍 죽게 만들었는가? 신의 작품인가? 신은 있는가? 있다면 침묵하는 것인가 아니면 모른 척 한 것인가? 유명한 신앙인은 과연 천당에 갈 정도로 진실로 착한 사람들인가? 뉴스에 나오는 그들의 권력욕과 탐욕은 무엇인가? 의문의 꼬리가 길어지니 종교의 문전이 닳도록 나가던 뭇 백성인 나의 발목마저… 잡혀지고 있다.    

죽는 것 보다 더 치욕스러운 궁형(宮刑:남자의 생식기를 자르는 형벌)을 받은 사마천(司馬遷)! 그는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서한(西漢, BC206-AD25)시대 한무제(漢武帝)는 명장 이광(李廣)의 손자 이릉(李陵)이 군대를 이끌고 흉노와 용감히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포로가 된 것에 크게 분노하였다. 모든 신하들이 이릉을 비난하였으나 사마천만이 옹호하므로 황제가 화가 나서 사람을 비참하게 하는 궁형에 처하도록 명했다.   

그는 이른 바 ‘이릉지화(李陵之禍)’ 를 겪으면서 자기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두 가지를 결심했다. 우선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유업을 계승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기왕 쓰려면 ‘정당한 것을 정당하게 주장’ 하는 그런 내용을 담아 인간의 정당한 역사를 기록해서 후세에 남기겠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의지에 따라 그는 ‘살아남는 것’ 을 택하고 딸의 도움을 받으며 실로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방대한 역사서《사기(史記)》를 완성한 것이다.

그는 저서에서 치열하게 살다 간 인물들, 즉 자객과 상인ㆍ모사가ㆍ골계가(滑稽家)ㆍ풍자가 등의 실패와 성공, 그리고 좌절과 재기를 다루면서 승자와 패자가 공존한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나아가 성공과 실패 사이의 간극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사기의 앞부분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감히 하늘을 의심한다는 天道是非(천도시비)라는 말을 사람의 폐부를 통렬하게 찌르는 필치로 표현하였다.  

“흔히 하늘은 정실(情實:사사로운 정이나 관계에 이끌리는 일)이 없어서 언제나 착한 사람 편을 든다(天道無親常與善人)고 하는데 그건 부질없는 말인 것 같다. 이 말대로라면 착한 사람은 언제나 번영해야 하고 오래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어질기만 했던 백이와 숙제는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굶어 죽었다. 70명 제자 중 공자가 가장 아끼고 칭찬한 안연(顔淵)은 가난에 찌들어 쌀겨도 제대로 먹지 못하다가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 편을 들었다면 이는 어찌 된 까닭인가? 도척은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으로 회를 쳐 먹는 등 악행을 일삼았으나 끝내 제 수명을 온전히 누리고 죽었다. 도대체 무슨 덕을 쌓았기 때문인가? 이런 예들은 너무나 두드러진 것이지만,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다. 과연 하늘의 뜻은 옳은 것이냐 그른 것이냐. 가장 공명정대하다고 여겨지는 하늘은 과연 바른 자의 편인가 아닌가(天道是邪非邪)?”

그는 하늘이 가진 공명정대함을 편으로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확신하는 심정사이의 갈등을 드러냈다. 하늘을 의심한다기보다 하늘을 우러러 피눈물로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성어를 오늘 날 사람들의 말로 하자면, ‘하늘은 왜 이렇게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냐’고 따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모든 사람들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정직하고 법을 지키며 성실한 사람이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기대’하지만, 현실을 보면 사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매우 많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이 성어를 써 하늘을 원망하며 사회가 정화되어 불의와 부정과 불법은 통하지 않는 진정 ‘사람 사는 세상’ 즉 천도시비가 바로 선 사회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독백은 여전히 남는다.

‘지나가버린 역사의 진실은 다수의 침묵에 의하여 지금은 보여지지 않고 10년 아니 20년 후에 나타날 것인가? 아니면 진실은 영원히 허구에 의해 묻혀버리고 말 것인가? 정녕 하늘의 뜻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