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에 집착하는 황새보다 뱁새가 낫다

2013-06-21     윤효상 기자

어느덧 초여름이 오고 장마철이 시작됐다. <열린순창>의 문을 두드려 입사 한지 100일이 넘어간다. 나름의 생각과 소신으로 그동안 관심을 갖지 않았고 또 갖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을 정리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것들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재구성을 해보게 됐다. 내 고향 순창은 인구 3만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지역사회이다. 이런 지역사회에도 나름대로의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잘난 사람은 잘 나가는 부류다. 새에 비하면 긴 다리에 깃털도 아름다운 황새가 아닐까 싶다. 못난 사람은 어떤가. 뛰어난 미모를 갖지 못하고 남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외모를 한 사람들을 뱁새에 비교한다.
그 누가 황새처럼 살기를 싫어하겠는가. 누구나 어떠한 분야에서 정점에 서기를 원하며 낮은 자리로 내려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남에게 억울하게 양보하는 것에 자존심을 거는 사람도 많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높은 자리에서 대우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그러나 황새가 되고자하는 사람은 많은데 모두가 앉을 수 있는 넓은 공간은 없다. 특히 지역사회에서는 그것이 더욱 작아진다. 모두가 정상의 자리에 앉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곳저곳에서 남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할 사람이 부족해 사회의 균형이 깨진다.
꼭대기가 있다는 것은 낮은 곳도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난 사람이 있으면 못난 사람도 있다. 못난 사람이 없다면 잘난 사람도 없다.
어느 회사의 구내식당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두 줄을 서서 잡담을 하며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그 회사의 사장이 들어왔다. 그는 자기가 그 회사의 제일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긴 줄의 끝에 섰다. 그리고 앞에 서있는 사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사장이기 때문에 특별대우를 받으려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부하직원들이 알아서 사장에게 좋은 기회를 주지도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어우러짐이 필요하다. 잘난 황새도 먹이를 잡아먹으려 날갯짓을 하는 것은 뱁새와 다르지 않다. 더 나은 대우를 바라거나 개인에 욕심을 부리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은 사라져야 한다.
뱁새로 보이지만 자기보다 더 힘든 사람을 돕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대우받고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