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추어탕에 얽힌 이야기 … “어머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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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추어탕에 얽힌 이야기 … “어머니 사랑합니다”
  • 주건국 독자
  • 승인 2014.07.1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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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건국 (금과 매우)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다.
경지 정리가 되기전 한참 오래 전에는 툼벙 객산 수랑이 있고 논마다 도랑이 자연스럽게 놓여있어 물만 막았다 하면 미꾸라지 붕어 중게기 드랭이가 득실대던 시절, 해름 판 엄마의 시함 앞 양은그릇에는 미꾸라지가 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두름박으로 물을 퍼 올려 양은그릇에 부으면 누런 놈 꺼먼 놈 배떼지가 흑 허니 보인 놈들이 우글우글 거리며 흐레물을 하루 저녁 빼고 나면 이튿날 낮에는 실가리와 다진 마늘 등을 넣고 가마솥에 절반이상 물을 잡고 불을 때 넘칠 때가 되면 그 냄새가 그야말로 무진장 좋았다.
철부지 아들은 학교 갔다 와서 책보를 던져놓고 윗 논에서 아래 논으로 물 떨어지는 곳에 가 흙으로 물을 막고 고무신으로 물을 품어내고 두 손으로 흐레를 재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통통한 미꾸라지는 작은 손이지만 절대로 도망칠 수 없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려 한 그릇 가득 잡은 미꾸라지를 집에 가져가면 엄마 아빠는 매우 흐뭇해 하셨다.
다음날 또 가마솥에 풍덩, 우리 식구들이 며칠 간 잘 먹을 수 있었다. 중학생이 되니 몸이 커지고 힘이 세졌다. 수대와 얼기미를 들고 물이 많은 툼벙을 한번 품어 보기로 했다.
동갑이네 툼벙이 만만해 보였다. “좋았어. 여기는 많이 잡힐 것 같혀” 한번 두번 스무번 품고 조금 쉬었다 또 품고 허리가 아플 때 쯤이면 어느새 바닥이 보이고 그 때 부터는 손놀림이 빠르고 눈빛이 이쪽으로 저쪽으로 혼자서도 신이 났다.
한번은 중간고사 시험이 내일인데 공부보다는 논에 가서 미꾸라지 잡고 싶은 생각이 지배했다. 또 갖가지 도구들을 챙겨 핑핑이 뜰로 나섰다. 어느 쪽 논이 고기가 제일 많은지 다 아는바 물만 품으면 한 그릇 정도는 족히 잡았다. 중학교 2학년 때 건강이 좋지 못한 아버지는 일찍 하늘나라로 나시고 어머니는 자식들은 어리고 고등학교 까지는 가르쳐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농사지어서는 힘들고 돈벌이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셨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몸이 더 커지고 힘도 더 세졌다. 이제는 동네 형님의 경운기를 빌려서 마을 앞 빨래터 냇가를 품기로 마음먹었다. 수로가 좁은 데를 막고 양수 작업을 시작했다. 시간이 한찬 지나도 물량이 줄지 안했다. 이를 지켜본 마을 두 분 형님이 경운기 두 대로 긴급 지원에 나섰다. 경운기 세 대로 품으니 눈에 보이게 물이 줄어들었다. 잠시 뒤 요즘 표현으로 월척이 ‘여기서 팔딱 저기서 팔딱’ 지켜보는 구경꾼들은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뛰어 들었다. 이때 잡은 고기를 마을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다. 학비를 대던 어머니는 서울에서 시골로 내려 오셨다.
군 제대를 하고 경기도와 서울에서 이런 저런 사회생활을 하다가 어머님과 고향집 생각에 견딜 수 없어서 고향 순창으로 내려왔다. “어머님과 함께 밥이나 먹고 살면 되지”하면서 살았다. 어머님은 어느덧 세월이 지나 환갑이 가까워졌다. 아들로써 손주를 안겨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땅한 색시도 없어서 옆 마을 통일교회에서 결혼을 시켜준다는 것을 알고 무작정 찾아가서 좋은 짝을 맺어달라고 부탁했다.
몇 년이 지나자 좋은 짝을 만났고 바람대로 손주를 안겨드렸다. 어머님은 굽은 허리를 부여잡고 더욱 더 열심히 추어탕을 끓이셨다. 첫째, 둘째, 셋째까지 아들만 낳았다. 딸이 없어 서운했다. 우리 부부는 또 노력했다. 하늘의 도움으로 넷째 다섯째 공주가 태어났다. 운이 좋은 놈이었다. 딸기ㆍ메론ㆍ호박ㆍ파프리카 등 여러 농사를 지었으나 살림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머님의 허리는 더 굽고 오후가 되면 한의원에 침 맞고 물리치료 받고 조금 회복되면 매일 반복되는 일을 계속했다. 몇 년 전부터 ‘추어탕 식당 운영을 못하면 어떻게 살아가나’ 생각과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집안 식구들이 다 모였을 때 형님하고 말다툼을 심하게 했다. 그 다툼을 보신 어머니는 추어탕을 끓이지 않으셨다. 대단히 잘못 되었다. 어머니 앞에서 싸우면 안 되는데 여러 생각이 교차 하면서 참지 못하고 화를 낸 것이 죄스러울 뿐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어머님과 형님 가족들에게 사과드린다.
“용서를 빕니다.”
일평생 자식들 위하여 살아오셨고 아버지를 일찍 보내고 자식들만 위해 살아오신 어머님 마음을 어찌 이 둘째 자식이 모를까.
“저도 처음에 먹었던 마음 변치 않고 살고 있으니 부디 이 자식 용서하시고 다시 미꾸라지 국 맛나게 끓여 주세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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