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편지(5)/ 인스부르크 다시 올 이유 … 아무것도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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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편지(5)/ 인스부르크 다시 올 이유 … 아무것도 못해서
  • 조남훈 객원기자
  • 승인 2015.03.10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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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보낸 다섯번째 편지

 

▲옴짝달싹 못하게 했던 눈.

조남훈 객원기자가 떠났다. 강원도에서 순창으로 바람따라 내려오더니 이젠 프랑스 '파리'로 갔단다.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열린순창>은 그의 타국생활 이야기를 연재한다.  다섯번째 편지는 눈 속에 파묻힌 오스트레일리아.  <편집자>

 

이틀 내내 내린 눈에 옴짝달싹 눈싸움만
요리대회로 기분전환, 시내구경 은조금만

학생들과 함께하는 4주간의 여행기간, 변화무쌍한 날씨와 돌발 상황에 의해 계획한 일정이 한 번쯤 틀어질 날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정을 아예 비우고 하루를 ‘중간평가의 날’로 정하기도 했다. 예상은 맞았다.
이탈리아에서 오스트리아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다닌 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무척 편했다. 화창한 날씨에 쾌적한 도로환경까지 갖춰지니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에 도착했다. 한 가지 걱정이라면 해발 1000미터(m)가 넘는 곳에 있는 숙소 위치였다. 인스부르크는 동계올림픽을 치룬 지역답게 눈이 많이 내린다. 기온이 높아 비가 내리더라도 숙소에는 눈이 될 게 뻔해보였다. 이미 도로 옆에 눈이 발목까지 쌓여있어 도착하자마자 인솔진이 한 일은 일정이 틀어지게 될 경우에 대비하는 일이었다. 짐 정리를 하고나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요리경연대회를 제안했다. 넓은 주방과 식당시설을 통째로 쓸 수 있고 평소 먹고 싶었

▲서툴고 눈도 맵고 때론 매캐한 연기도 났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총기가 있었다.

 

거나 해보고 싶은 요리들을 직접 하는 것도 괜찮으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찬성했다. “설거지도 제대로 안하는 애들이 무슨 요리대회냐”며 반대한 학생 몇 명에게는 얄미워 기본반찬으로 된 식사만 따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결국 그들 역시 요리대회에 합류했다.
요리대회 개요는 이렇다. 시작부터 끝까지 조별로 결정하고 만들며 식사도 함께 한다. 재료비는 한 사람당 10유로씩 책정해서 조별로 요리를 만든다. 인솔진이 심사를 하고 우승한 조에게는 특별선물을 주는 것이다.
예정된 시각이 되자 장을 보러 갈 학생들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나왔다. 모험을 할 차례였다. 숙소와 인스부르크는 차로 10분 거리에 있지만 고도차가 무려 500m나 된다. 체인을 쳤어도 눈길 안전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체인이 끊어져 학생들이 차를 미느라 고생을 했다.
이윽고 요리할 차례가 왔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저마다 부산하게 움직이다보니 주방이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아직은 칼질도, 불 다루는 방법도 모르는 아이들이 혹시나 다칠까봐 걱정도 됐다. 하지만 저마다 엄마 어깨 너머로 본 그 모습들을 흉내 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별다른 조언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다음은 맛을 볼 차례, 훈제오리구이와 샐러드를 낸 1조는 1등을 자신하고 있다. 2조는 통닭과 동그랑땡을 준비했는데 닭이 속까지 익지 않아 이미 체념한 모습, 스테이크를 만든 3조는 심사도 하기 전에 이미 먹고 있다. 쇠고기 초밥과 파 겉절이, 디저트 등으로 한껏 멋을 낸 4조는 음식을 너무 적게 만들어 자기들 먹을 것도 부족했다. 심사결과는 맛과 창의성, 협동심, 청결에서 모두 우수한 점수를 받은 4조가 우승! 4조에는 간식용 과자와 식사준비 면제 1일권이 주어졌다. 식사조 면제는 인솔자도 탐낼 만큼 엄청난 혜택이었다.

 

▲성 야곱성당의 파이프오르간 소리는 유럽 아니, 전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예배시간이 아니라 듣지 못했으니 다시 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오스트리아의 눈은 이틀이 지나도 멈출 줄 몰랐다. 인스부르크와 잘츠부르크를 둘러보려던 계획은 통째로 틀어졌다. ‘오스트리아까지 왔는데 오케스트라 공연 한 번 못보고 그냥 간다’는 생각은 사치였다. 인근의 봅슬레이 경기장 제설차량이 숙소 앞까지 눈을 치워주는 덕분에 우리는 떠나는 날이 되어서야 두 시간 남짓 인스부르크를 둘러볼 수 있었다.
인구 14만의 작은 도시 인스부르크는 사실 볼거리는 많지 않다. 막시밀리안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흔적들이 문화유산이 됐고 헤르초크 프리드리히 거리, 우리식으로 치면 중앙대로와 주변의 골목만 누벼도 어지간한 볼거리는 다 볼 수 있다. 오스트리아의 집들은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 돌출된 발코니가 많이 있는데 이 발코니들 가운데 유독 지붕이 황금색인 건물이 있다. 16세기 막시밀리안 1세가 광장에서 개최되는 행사를 보기 위해 만든 발코니의 황금지붕으로 지금은 올림픽박물관으로 사용된다. 구시가지 입구에는 작은 개선문이 있다. 이 개선문의 양쪽에는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아들의 결혼과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식이 달려있어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헤르초크 프리드리히 거리와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는 여름이면 거리 악사들로 붐빈다. 음악을 공부하러 한국에서 온 학생들이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꽤 나온다고 하니 여름에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눈여겨봐도 되겠다.
어느덧 여행도 후반이다. 인스부르크의 겨울은 우리에게 다소 가혹했지만 인터라켄과 마찬가지로 눈 덮인 설산은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독일로 가는 내내 음악여행을 주제로 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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