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마음은 여고생! 한국어 배우는 ‘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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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마음은 여고생! 한국어 배우는 ‘언니들’
  • 김슬기 기자
  • 승인 2015.05.13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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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지원센터 한국어학당 현장스케치
매주 수ㆍ토요일 주공아파트에서 ‘한글공부’

 

▲(왼쪽부터)윈럼튀영, 누엔티엔녹휘엔, 전지현 강사, 팔코마리셀, 한지해 씨, 부티이엔, 말리사토타안빌리에도, 박엘사, 김희영 씨와 팔코마리셀의 딸 예슬이, 그리고 말리사토타안빌리에도 아들 영진.

 

구경만 해도 재미난 시간. 피해가 될까봐 웃음을 참아보지만 ‘빵’ 터지는 웃음은 나뿐만이 아니다. 선생님의 한 마디에 웃고, 돌아가며 한 문장씩 읽다가 웃고, 이러니 공부 시간이 기다려지겠다 싶었다.
주공아파트 1층, 환하게 불이 켜진 사무실에서 불타는 학구열을 뿜어내는 여성들이 있다. 필리핀, 베트남, 몽골, 중국, 캄보디아에 친정을 둔 이들은 매주 수ㆍ토요일 저녁 7시부터 두 시간 동안 다문화가족지원센터(센터장 문정현) 한국어학당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발음 연습을 하는 ‘언니’들의 표정이 실감난다.
차근차근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베트남에서 온 ‘윈럼튀영’, 여고생처럼 수줍게 웃으며 강사선생님을 바라보는 ‘누엔티엔녹휘엔’, 오빠들과 놀고 있는 예슬이를 챙기며 공부에 집중하는 엄마 ‘팔코마리셀’,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또박또박 한글을 읽는 한지해 씨, ‘~가’ 발음이 잘 되지 않는다며 애 태우던 ‘부티이엔’과 영화배우 같은 재미난 표정으로 웃음을 준 ‘말리사토타안빌리에도’, 조용하지만 내공 있는 큰언니 ‘박엘사’, 학당의 분위기메이커 ‘김희영’ 씨까지 개성이 넘친다.
잘 되지 않지만 ‘노력’하는 모습에 멋있고 진지하면서도 웃음 가득한 얼굴에 보는 이마저 치유가 되는 듯 시간이 빠르게 갔다.

지난 9일 저녁 찾은 한국어학당은 평소보다 출석률이 적다지만 빈틈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지현 강사는 “평소에는 15~16명 정도 나오는데 오늘은 많이 안 나오셨다. 필리핀ㆍ베트남에서 온 분들이 많고 몽골, 중국, 캄보디아에서 오신 분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으로 시집와 가정을 이루고 생활한 지 오래 됐지만 제대로 된 한국어 교육을 받지 않아 발음이 부정확했던 다문화 이주여성들은 한국어학당에 나오면서부터 눈에 띄게 발음이 좋아져 자신감을 찾고 있다고. 또 다 같이 모여 공부를 하니 분위기도 좋고 서로 경쟁이 되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고 있다. 아이들도 데리고 나오면 저희들 끼리 모여 노니 육아 걱정도 덜며 공부를 할 수 있다.
“일료일? / 아니, 이료일! / 일, 요, 일? / 아니, 붙여서 발음해야지요. 이~료~일! / 일~료일? 아, 너무나 어려워요 / 하하하하하!”
어려운 발음은 교정에 애를 먹지만 학생들은 즐겁다. 민주ㆍ창호 남매를 키우는 한지해(43ㆍ순창읍 교성ㆍ필리핀) 씨는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니까 좋다. 처음에 한국에 와서는 그냥 혼자 한국말을 배우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배웠는데 선생님한테 배우니까 어렵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여덟 시간 실습을 하면서도 한국어학당에 나온 김희영(42ㆍ순창읍 교성ㆍ필리핀) 씨는 “몸은 피곤하지만 그래도 보고 싶어서 나왔다. 나오면 기분이 좋고 즐겁다”고 말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가정의 달 5월에는 더욱 생각날 것만 같은 친정집 이야기에도 모두들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말리사토타안빌리에도(53ㆍ순창6길ㆍ필리핀) 씨는 “한국에는 어버이날이 있지만 다른 나라는 5월에 어머니날(마더스데이), 6월에 아버지날(파더스데이)가 있다. 그날 어머니, 아버지와 영화를 같이 보거나 선물을 드린다”면서 한국에서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것처럼 꽃은 드리는지 묻는 질문에는 “그냥 밖에 있는 꽃 꺾어서 드리죠, 뭐”라고 말했다. 모두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한지해 씨는 “아이들이 곧 대학에 들어갈 텐데 돈 많이 벌어야 한다. 고향에 아버지가 계시는데 국제전화하면 돈이 많이 나오니까 전화도 잘 안 하게 된다”면서 “힘들지만 돈을 벌어야 아이들을 가르치니까 청정원에 일 다닌다. 돈 벌어도 무조건 필리핀에 돈 보낼 수 없다. 우리 아이들 가르쳐야 한다”면서 “일 하고 저녁에 공부하러 오면 모임에 나온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 온 언니 동생들과 속상한 일도 터놓고 이야기 하고 기분도 풀린다”고 말했다.
함께 한국어를 배우며 ‘정’을 쌓고 있는 그들. 가정의 달 5월에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할 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학당’은 친정집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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