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중소기업 생산직에 4년제 대졸 취업 불허 “인권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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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중소기업 생산직에 4년제 대졸 취업 불허 “인권침해”
  • 조혜경 기자
  • 승인 2015.07.08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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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작은 말이나 행동 하나가 남에게 큰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 의도치 않은 실수라며 넘어가곤 하죠. 문제는 이런 말이나 행동이 상처를 넘어 차별이나 인권침해로 이어질 때입니다. 일상 속 인권침해, 꼭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차별’ 혹은 ‘침해’라고 판단한 생활 속 인권침해 사례들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대학 교수님이 내준 과제가 외부 게시판에 실명 글 쓰기

문> 언론학 관련 수업을 듣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며칠 전 교수님께서 과제를 내주셨는데,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OO대 학생이 언론을 비판함’이란 제목으로 방송사 1곳, 언론사 1곳의 게시판에 ‘종북 좌익을 진보라 부르는 언론사기 그만하라’ ‘언론은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는 대통령 후보, 공직자, 공무원의 신원을 밝혀라’ 등의 글을 A4용지 두 장 분량으로 쓰라는 과제였거든요. 실명으로 게시판에 글을 꼭 올려야 하나 싶습니다만, 성적에 과제수행 점수 비율이 20%이기 때문에 무시하기도 어렵습니다. 특정 주제가 있는 글을 실명으로 인터넷에 올리라는 교수님, 인권침해가 아닌가요?

답> 인권 침해가 맞습니다. 해당 수업 교수는 이 과제가 ‘철학과 현실의 본원적 관계’에 대해 시야를 넓히는 훈련의 과정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대학에서 교수의 자유는 내부에서 행해지는 ‘진리 탐구의 과정’을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입니다. 만약 교수가 비판적 사고능력을 길러주고자 했다면 해당 과제를 학내에서 제출하도록 하고, 그에 관한 비판적 토론만 진행했어도 충분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강제로 외부 게시판에 실명으로 글을 게시하도록 한 행위는 헌법 제 22조에서 보장하는 학문과 교수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 국가인권위는 이 대학 총장에게 해당 교수를 징계조치하고, 해당 과목 수강 학생들의 피해를 구제할 것과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할 것을 주문했다.

구청이 합리적 이유 없이 성소수자 광고 수정 요구

문> 서울에 살고 있는 성소수자입니다. 성소수자에 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 운동가이기도 하고요. 최근 ‘성소수자 다양성’에 관한 내용을 알리기 위해 구청의 옥외광고물을 위탁관리하는 업체에게 현수막 게시를 신청하고 도안(문구와 그림)도 제출했습니다.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성소수자입니다’ ‘LGBT(L: 레즈비언, G: 게이, B: 바이섹슈얼, T: 트렌스젠더), 우리가 지금 여기 살고 있다’는 문구였어요. 현수막엔 소위 ‘야한’ 사진이나 그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구청은 처음엔 게시를 불허하더니, 이제는 현수막 도안과 관련해 적정성을 심의하는 심의위원회를 열었네요. 구청 직원 3명과 디자인 분야 전문가 5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문구를 수정해야만 현수막을 게시해주겠다고 하는데요. ‘열 명 중 한 명’이라는 표현이 과장됐고,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성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문구를 수정하지 않으면 현수막을 걸어주지 않겠다는 구청, 인권침해 아닌가요?

답> 네, 이 구청의 행위는 특정 단체에 대한 인권 차별에 해당합니다. 광고물 관리법에 따르면 광고 허가권자는 광고 내용이 이 법 5조에 해당되지 않으면 문제삼을 수 없도록 돼 있습니다. 이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의 심의 기준에선 ‘동성애’ 조항이 삭제된 바 있습니다.
  또 허위·과장 광고 규제의 경우 상업적 광고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성소수자 현수막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LGBT’란 표현 역시 단순히 성 정체성을 표현하는 언어로서 왜곡된 성 의식을 심어준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현수막 게시를 금지한 구청은 헌법 제21조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봅니다.

▶ 국가인권위는 해당 구청장에게 옥외광고물의 내용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게시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관련 직원들에게 ‘성소수자 차별금지’ 인권 교육을 받을 것을 주문했다.

고졸·전문대졸 출신만 생산직 지원 자격 한정

문> 4년제 대학을 졸업한 20대 대졸 남성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취업은 하늘에 별따기라죠. 취업 사이트를 돌아보다 한 중소기업 생산직 모집공고에 눈이 멈췄죠. 그런데 생산직의 경우 고등학교나 전문대 졸업자만 한정해 모집한다는 겁니다. 4년제 대학 졸업자는 일반직이나 영업직에만 지원해야 했죠. 저는 고민 끝에 학력을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 증명서만 냈어요. 회사 내규엔 ‘허위 사실을 기재할 경우 합격을 취소한다’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결국 제가 학력을 낮춰썼다는 게 들통났고, 회사에선 근로계약을 파기하자고 하네요. 제가 괜찮다고, 고졸 출신과 같은 임금을 받아도 된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사직서를 냈습니다. 4년제 대졸은 생산직으로 받지 않겠다는 회사, 인권침해 아닌가요?

답> 고졸와 전문대졸자 출신으로만 생산직 지원자격을 한정한 이 회사의 채용 방침에 관한 고용노동부 장관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현행 고용정책기본법 상 학력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 균등한 채용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해당 기업을 포함해 국내 대기업 생산직의 대부분이 지원 자격을 고졸 이상 전문대졸 이하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관련 직무와 졸업한 학과와의 연관성 등 합리적 이유 없이 학력을 이유로 평등권을 침해하는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만약 고졸이나 전문대졸 지원자에게 채용의 기회를 더 주고자하는 취지라면 이들이 생산직 지원 시 가점을 부여하는 방식을 택했어야 할 것입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이 어려워 전문대에 다시 입학하는 등 ‘최종학력’의 정의가 모호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로 취업 기회를 제한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 국가인권위는 해당 중소기업에게 향후 생산직 지원 모집 시 4년제 대학 졸업자를 배제하지 않도록 했다. 또 교육·훈련이나 기술 자격증 등 합리적인 지원 자격 요건이나 가산점 제도를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학부모에 대한 신상 정보 중학교 교장이 실수로 공개

문> 중학생 아들을 둔 40대 엄마입니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 운영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있기도 하고요. 이 학교는 장애 아동들을 위한 특수학교로 학급당 학생 수가 7~8명 정도예요. 아이들 모두 초등학생 때부터 서로 알고 자라 매우 친하답니다.
  며칠 전 아들이 가져온 편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학교 교장선생님께서 ‘박OO 학부모 운영위원 불신임 건’이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전교생에게 나눠줬기 때문입니다. 네, 박OO은 제 이름입니다. 이 안내문이 들어있는 봉투는 봉해져 있지도 않았어요. 결국 아들은 제 이름 석자를 알고 있는 친구들로부터 "너희 엄마 잘리나봐?”라는 질문 세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기가 무서운지 학교도 가기 싫다고 하네요. 교장 선생님은 급히 보내다 보니 실수를 했다는데, 너무 속상합니다. 이런 건 인권침해라고 할 수 없나요?

답> 헌법 제 10조는 인격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인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 일부가 함부로 공개될 경우 부정적인 부분이 부각돼 나타날 가능성이 크고, 앞으로 사회 생활을 하며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인격권의 핵심은 자신에 관한 각종 정보의 공개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지에 있습니다. 밀봉되지 않은 학부모 운영위원 불신임 안내문 발송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에 대한 불명예스런 정보가 노출된다는 점에서 인격권 침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관련 내용이 어린 자녀들에게까지 알려져 발생한 2차 피해 역시 큽니다. 따라서 해당 학교장의 행위는 인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 국가인권위는 해당 학교장의 행위가 인권 침해에 해당하지만, 당사자에게 바로 문자 메시지로 사과한 점을 감안해 향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해 명문화할 것을 주문했다.
중앙일보 2015년 6월 1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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