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선 씨,수확의 기쁨 대신하는 ‘기계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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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선 씨,수확의 기쁨 대신하는 ‘기계장이’
  • 이담비 기자
  • 승인 2016.08.3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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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열심히 일했는데 나락 값은 계속 떨어지기만 하니 마음이 허전해 웃음이 안 난다는 김대선 씨. 사진이 잘 나오려면 웃어야 한다니 미소를 짓는 그에게 말했다. "웃어야 복이 와요"
봄부터 정성 쏟아 길러온 농작물의 수확 철이 성큼 다가왔다. 조벼는 벌써 수확이 끝났고 만생종 벼의 본격적인 수확도 곧 시작된다. 이 시기에 가장 바쁜 사람은 누구일까? 농민은 누구나 바쁘지만 흔히 ‘기계쟁이’라고 부르는 농민이 제일이지 않을까 싶다.
오산초등학교를 다니던 6년 내내 검정고무신을 신고 향가 터널을 지나 상판 없는 교각 늘어선 향가리 강가로 소풍을 다녔다는 기계장이 김대선(43)씨를 큰 돈 들여 단장한 향가유원지에서 만났다.

20살 해병대…23살 태국에서 주방장
대선 씨는 풍산면 대가리에서 나고 자라 20살에 해병대에 입대해 23살에 제대했다. 제대하자마자 군대 고참과 동업을 결심한 그는 태국에서 한국식당의 성공을 이루겠다는 부푼 꿈을 꾸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8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엠에프(IMFㆍ국제통화기금)가 터져 태국에 있던 한국 기업들이 모두 철수했기 때문에 손님이 없어 장사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97년 아이엠에프…귀농 농사꾼 ‘기계장이’


그렇게 돌아온 고향에서 그는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벌써 20년째. 농사 외에 다른 일에 도전해본 적이 없다. 그 중 기계장이로 산지는 18년 됐다. 대선 씨가 농사일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대형 농기계를 가지고 있는 농가는 거의 없었다. 마을 단위도 아닌 면 단위로 한 대나 두 대 있는 정도였다. 농사를 규모화하기 위해서는 대형 농기계가 필요했지만 한 두 대의 기계로는 수확기간 동안 많은 수확량을 소화하기 힘들고 수확 순서를 기다리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대선 씨는 ‘젊은 혈기에 내가 한번 해보지’ 하고 논 5마지기를 팔아서 첫 기계를 장만했다. 그 후 한 대씩 늘리다 보니 지금은 농사 기계란 기계는 다 가지고 있다. 그는 “기계가 생기니 내 것만 하고 끝낼 수 없어 한 집 두 집 해드리다 보니 이렇게 광범위 해졌어요. 마을 분들이 기계를 가진 사람에게 저절로 부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기계장이로 자리 잡게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현재 대선 씨는 풍산ㆍ팔덕ㆍ적성면을 돌며 40 가구의 벼농사를 책임지고 있다. 4~500마지기 정도의 규모다. 거기에 자신의 논 100마지기까지 짓고 있다. 초기에는 7~800마지기까지도 했지만 요즘은 기계를 가진 농가가 많아져 이 정도라고 한다.

부부 함께 ‘기곗일’…다툼 많지만 아내 사랑해
가을일은 보통 8월 중순부터 조벼를 베기 시작해 이맘 때 쯤 끝나고 만생종 벼는 9월 중순부터 시작해 10월 말까지 이어진다. 모내기철에는 새벽 5시에 들에 나가고 수확 철에는 오전 10시 쯤 나가서 해가 지면 집에 들어간다.
대선 씨는 아내와 함께 다니며 일한다. 대선 씨가 기계 운전을 하고 아내가 부수적인 일들을 거들어 준다. 20년 가까이 산 부부에다 항상 함께 다니며 일을 하니 다툴 때도 많다. “농약 칠 때 가장 많이 싸워요. 기계소리 때문에 소통이 안 되니 농사지으면서 제일 많이 싸울 때가 약 칠 때일 거예요. 이건 아마 대한민국 농사꾼들 다 동감할 걸요?”라고 말하는 그는 “아내에게 항상 고마워요. 마음속으로는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성격상 말을 못하고 살아 왔죠”라며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나락값 올랐으면…일해주고 ‘미안해’
20년 기계장이 농사꾼인 그는 요즘 마음이 많이 허전하다. 이번에 수확한 조벼 가격이 3만8000원이기 때문이다. 대선 씨는 “한 해를 열심히 일했는데 가격이 안 나와서 마음이 안 좋아요. 농업현실이 이런데도 농사는 계속 지어야 해요. 아마 다른 농사꾼들도 마찬가지로 나락 한가마니에 1만원이 된다 해도 농사는 지을 거예요. 농사꾼이 할 수 있는 건 농사뿐이니까요. 땅이 있는데 휴경할 수도 없잖아요. 힘들지만 열심히 살아야죠. 제가 수확해 드리는 어르신들께도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하지만 제 힘으로 나락 값 올려드릴 수도 없고 나락 값을 떠나서 다들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락시위’ 500만원 벌금도
현실에 대해 체념한 듯 말하지만 대선 씨는 2000년 대 초반 같은 농민회원인 김효진, 남궁단 씨와 함께 콤바인으로 88 고속도로 통행을 막아가며 ‘쌀값시위’에 직접 나선적도 있다. 그 때 벌금 500만원을 받았지만 후회는 없다.
또 대선 씨는 “웃으려고 하는 이야기지만 한 6~7년 전에는 일하러 가면 집집마다 새참으로 음식들이 거하게 나왔어요. 갖가지 음식에 술, 담배는 기본이고 닭도 잡아주셨어요. 일 끝나면 밥도 같이 먹으러가고 그랬었죠. 그런데 요즘에는 새참이라고는 전혀 없어요. 그 때는 이야기도 하면서 즐겁게 일을 했는데 요즘은 서로 눈치 보듯 분위기도 삭막해요. 이런 작은 모습에서도 힘든 농업 현실이 느껴지네요. 함든 농사지만 수확하는 기쁨이 있었는데 요즘은 수확하는 기쁨보다 걱정이 더 많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라며 안타까운 농업 현실에 씁쓸해 했다.
수확의 기쁨을 누릴 가을에도 한숨만 늘어가는 농촌에서 젊음을 바쳐 살아가는 김대선 씨. 그 뿐만 아니라 모든 농부들이 환하게 웃을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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